'남편이 아내를 구타하면 장(杖) 80대, 아내가 남편을 구타하면 장 100대, 남편이 아내를 때려서 죽게 하면 교형(목을 매달아 죽임), 아내가 남편을 때려서 죽게 하면 참형(목을 베어 죽임), 아내가 남편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경우는 능지처사(죄인을 죽인 다음 여섯 토막 냄)…'
<증보문헌비고> 에 기록된 조선시대 형률 조항의 일부다. 형률과 여성범죄의 양상에 비친 조선시대의 젠더(gender) 의식을 분석하는 논문이 14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한국여성학회 추계학술대회 '페미니즘과 사잇공간'에서 발표됐다. 유승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교수는 발표문 '조선후기 여성관련 범죄 양상과 사회적 인식'에서 성리학적 질서가 죄와 벌이라는 제도를 통해 노정하는 조선의 젠더 의식을 조명했다. 증보문헌비고>
유 교수에 따르면 조선 법제도의 바탕이 된 대명률(大明律)에는 노주(奴主)와 양천(良賤) 등 성리학적 질서에 따른 불평등만 내재할 뿐, 본래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젠더에 따른 차별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형률이 가족, 특히 부처(夫妻) 관계 내에서 적용될 때는 극명한 젠더 차별이 드러나는데, 같은 범행이라도 아내가 저질렀을 경우는 행위자가 남편일 경우보다 1등급씩 높은 형벌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가족 내'로 국한된 이러한 차별적 관념은 조선시대 여성범죄의 유형과 특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 교수는 <일성록> 의 범죄 기록 중 여성이 연루된 것으로 기록된 516건(전체의 18%)을 분석하는데, 조선후기 여성 관련 범죄는 대부분 간음, 추문, 모욕 및 복수, 부부간 불화에 관한 것이다. 특히 위핍치사(타인을 위협해 자살하게 만드는 것)가 12%나 되는데, 이는 겁간을 당하거나 추문에 휩싸이는 등 유교적 여성상에 흠집이 난 여성들이 죽음으로 내몰렸던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분석이다. 일성록>
유 교수는 "조선시대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경우에는 여성을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해 차별하거나 보호하려는 의식이 없었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 발생하는 범죄에 대해서는 엄격한 성차가 존재했다"며 "조선시대 여성은 오늘날보다 더 복잡한 삶의 지평 속에 서 있는 존재였다"고 분석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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