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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의사소통과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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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의사소통과 민주주의

입력
2009.11.17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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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럽 사회를 다녀보면 익숙하지 않은 장면을 자주 본다. 서유럽 웬만한 도시에서도 노숙자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옷을 제대로 차려 입은 멀쩡한시민이 노숙자와 거리에서 뭔가에 관해 한참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눈에 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남루한 차림새의 노숙자와 시민 사이에서 오가는 대화의 주제가 혹 그들 사이에 있을 법한 시빗거리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심지어 세계 평화와 같은 사안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자유롭고 평등한 대화

그런 대화는 사뭇 진지하며 제법 긴 시간 진행된다. 왜 이러한 상황이 우리에게 낯설게 보이는 걸까? 아마도 이 같은 장면이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벌어진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은 대화하는 두 사람의 외모에 더 주목하고 멀쩡한 시민을 이상하게 취급할 것이다.

다분히 극단적 사례로 비칠지 모르지만, 서구 민주주의를 지탱해온 역사적 관습적 뿌리의 단면을 보여준다. 정치 토론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영국의 선술집 펍(Pub)이나 프랑스의 살롱(Salon)은 그 상징적인 공간이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여론에 기반을 둔다. 여론은 근대 이후 문자 해독력을 지닌 주체적 시민들이 정치적 의견을 교류하는 일종의 추상적인 장(場)에서 형성되었다. 이를 흔히 공중(公衆, the public)이라고 부른다.

근대 초기 영국의 공원이나 선술집에서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펼친 자유로운 정치 토론이나, 계층적으로 다소 제한적이지만 프랑스 지식인들이 살롱에 모여서 상당히 무거운 주제를 두고 벌이는 토론은 그 고전적인 예이다. 그러한 구체적인 토론 공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오늘날에도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매체를 통해 형성되는 '제3의 질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이를 통해 여론은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마냥 꿈틀거린다.

위에서 언급한 거리의 장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다. 대화의 과정을 거치는 정치적 의사표현에서 발화자(發話者)의 사회적 신분이나 지위가 표면에 드러나지 않고, 오로지 대화의 내용이 중심에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올바른 의사소통의 상황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말하는 사람의 권력이나 지위에 따라 말의 힘 혹은 설득력이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아울러 대화 내용이 정말 경청할 만한 가치를 지닌다면, 그 말의 출처가 노숙자든 하위 계층이든 일반시민이든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쓴 <의사소통행위이론> 은 이러한 일상적인 대화상황으로부터 무거운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뿐만 아니라 기본 이념을 도출해내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하버마스는 경제적으로 완전한 평등실현을 통해 대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오늘날, 그 대안으로 평등한 대화상황에서 서구 민주주의의 토대를 찾고자 했다. 그에 따르면, 이상적인 의사소통 상황에서는 오직 대화 내용의 진정성(眞正性)과 진리가 핵심적인 규준이지 의사소통 참가자의 계층 및 계급적 배경은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의사소통의 상황에서 비로소 평등한 인간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발언 내용에 귀 기울이길

그의 이론은 지나치게 서구적이며 낙관주의적 관점이라고 비판 받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과할 정도로 직함이나 존칭어가 발달한 우리의 언어 사용에 비추어 볼 때, 우리에겐 그러한 이상은 거의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발화자의 지위와 대화 참가자의 권력관계가 대화의 내용보다 우선하는 경우가 잦다. '계급장 떼고 얘기하자'는 속된 표현은 그래서 등장하는 안타까운 항변인 셈이다.

들을 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고 그것이 진정성에서 우러나왔다면, 경청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실천이다. 귀를 열고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봐야 한다. 귀를 닫으면 독선적인 태도에만 그치지 않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봉쇄해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만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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