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 대형냉동차 부문 시장 1위 특장차 전문제조업체 야노(矢野)특수자동차는 2007년 길이 13.2m의 신형 24㎘ 탱크로리를 개발했다. 기존 14.6m 24㎘ 탱크로리에 비해 길이가 1.4m 짧아졌을 뿐이지만, 이 탱크로리는 예전에는 20㎘ 탱크로리로만 다닐 수 있던 좁은 골목길이나 규모가 작은 주유소를 마음대로 누비게 됐다.
야노특수자동차에 제품개발을 의뢰했던 이데미츠 코우산 등 정유사들은 과거에 비해 수송횟수와 운반비용을 대폭 줄일 수 있는 신형 탱크로리의 탄생에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이 회사 야노 요우스케 회장은 고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투철한 장인정신으로 유명하다. 그는 늘 '고객의 생각을 제품으로 만드는 것이 야노의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본산 자동차 '애로우 1호'를 만든 창업주인 야노 코우이치(75년작고)씨로부터 이어져온 최고 수준의 기술력에 야노 정신이 결합하면서, 야노만의 모노즈쿠리(物造りㆍ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 만들기) 철학이 탄생한 것이다.
1958년 세상에 인스턴트라면을 내놓은 닛신(日淸)식품은 71년 세계 최초로 컵라면까지 개발하면서 식문화에 혁명을 가져왔다. 라면 개발에는 면 보관, 수프, 컵 용기 및 뚜껑 등의 숱한 난제가 있었지만, 2007년 세상을 떠난 안도 모모후쿠 닛신식품 창업주는 '요리를 만드는 수고를 덜게 하겠다'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을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50년 대표상품이 된 치킨라면을 개발했다.
야노특수자동차, 닛신식품, 교세라 등 일본의 제조업 명가들의 공통분모는 '모노즈쿠리' 정신이다. 모노즈쿠리는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과 기술력을 토대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기업가 정신을 일컫는 용어다. KOTRA가 16일 일본 제조업 명가 10곳의 모노즈쿠리 정신을 해부한 '일본 사람들은 왜 물건을 잘 만들까'를 발간했다.
전세계 세라믹 시장의 70%를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 교세라는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고객의 요구 조건에 맞춘 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력으로 1959년 창업한 뒤 10년도 안돼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의 납품 수주를 따내는 등 일본 전자산업 부흥의 숨은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교세라는 성공 비법으로 기술력보다 '마음 중심의 경영 철학'을 앞세운다. 부품까지 진실한 마음으로 만드는 직원들의 마음가짐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는 것. 이 때문에 능력이 출중하나 열정이 부족한 직원보다는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열정이 높은 직원이 큰 성과를 낸다고 믿고 있다.
95년째 지우개만 만들고 있는 시드는 천연고무 대신 플라스틱을 사용해 처음 지우개를 만들어냈다. 수정액의 단점을 보완한 수정테이프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지우개를 만들기 위해 플라스틱을 가열하는 온도와 시간은 시드의 일급 기밀. 시드의 성공 비결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수정테이프 개발하기까지도 무려 600㎞의 테이프를 희생시켜야 했다. 니시오카 야스히로 사장은 "다른 기업이 모방하고 싶어하는 제품을 앞서 만들어내는 것이 생존의 방법"이라며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의 감동을 잊지 않고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열정이 신상품 개발의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한정현 KOTRA 일본사업단장은 "높은 기술력과 장인정신으로 대변되는 일본 제조 명가들을 통해서 모노즈쿠리 정신이 눈앞의 이윤을 추구하기보다는 종업원과 고객,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한다는 경영철학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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