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집 마당에 놓아 기르던 닭은 사흘에 하루 정도를 걸러 가며 알을 낳았다. 알 낳는 자리도 정해진 데가 없었다. 손바닥으로 한참 비벼 보드랍게 만든 짚을 깔아 자리를 만들어 줘도 며칠이 안 가 이내 장소를 바꾸었다. 헛간이나 마당 한 구석의 지푸라기 쌓인 곳, 뒷밭이나 부엌의 마른 흙 웅덩이 등으로 수시로 장소를 옮겨가며 알을 낳았다. 동물성 단백질이 귀하던 시절이라 알을 낳은 후 암탉이 내는 특유의 울음을 듣고 재빨리 달려가, 따스한 달걀을 찾아 부엌 찬장 그릇에 담는 것은 귀 밝고 발 빠른 어린애들 의 일이었다.
■산에서 더러 꿩이나 산비둘기 알, 작은 새알을 주워왔지만 달걀에 비해 작고, 봄에나 가능해 재미거리에 그쳤다. 다만 똑 같은 새인데 왜 야생의 조류는 닭이나 오리처럼 자주 알을 낳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원래 그렇다"는 게 어른들의 설명이었지만, 가금(家禽)의 진화와 근대적 육종기법이 결합된 결과라고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할 나이였다. 그런데 알 낳는 선수인 닭도 봄에 알 품을 때만큼은 산란은 물론이고, 그 이전 단계인 배란부터 억제된다. 양계장 닭은 이런 조절기능마저 잃은 계통만 떼어 고정한 별종이다.
■조류의 배란은 호르몬 작용으로 난세포에 난황(노른자)이 축적된, 성숙한 난세포가 복강의 수란관으로 나오는 과정이다. 배출된 난세포가 수란관에서 정자를 만나 수정이 되고, 수란관을 내려가면서 난백(흰자)이 붙고 껍질이 만들어져 몸 밖으로 나오는 게 산란이다. 신기하게도 수정란은 어미의 포란 욕구를 자극하고, 알을 품으며 느끼는 특별한 접촉 자극은 배란의 출발점인 난세포 성숙을 제약한다. 조류의 배란 억제는 포유류에도 이어져 임신과 출산, 수유기에는 배란이 중지된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현생인류의 진화는 아직 유전인자(Gene) 변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반면 문화인자(Meme)의 변화는 빛살처럼 빠르다. 몸은 10만년 전과 같은데 의식과 생활은 최첨단이다. 산아제한이 시작된 지 50년도 안 된 한국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 수준인 게 좋은 예다. 사춘기에 결혼해서 폐경 때까지 생기는 대로 아이를 낳아 젖을 물렸던 옛 여성들이 가임기의 절반 이상을 배란 없이 지냈던 데 비해 현대 여성은 너무 잦은 배란을 하며 사는 셈이다. 잦은 배란과 여성 암의 높은 상관관계가 잇따라 보고되는 걸 보면, 유전인자와 문화인자의 진화적 괴리는 이미 수인(受忍)한도를 넘어선 듯하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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