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의 입에서 "무죄"라는 말이 떨어지자 그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살아온 28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에 스쳤다.
신군부 쿠데타에 성공한 전두환 장군이 제12대 대통령에 취임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981년 3월 7일, 전남 진도의 농협 직원이던 박동운(64ㆍ당시 37세)씨의 집에 국가안전기획부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박씨는 영문도 모른 채 체포돼 서울 남산 취조실로 압송됐다. 6ㆍ25때 행방불명됐다가 남파된 아버지에게 포섭돼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였다. 박씨의 어머니, 동생, 숙부, 고모 등도 잇달아 체포됐고, 박씨 일가 7명은 순식간에 진도를 거점으로 암약한 '가족간첩단'이 됐다.
그 사이 박씨는 남산에서 63일간 영장 없이 불법 구금된 채 조사를 받았고, 안기부는 박씨에게 두 차례 북한으로 잠입해 지령을 받았다는 누명을 씌웠다. 라이터불로 몸을 지지고 발가벗긴 채 공중에 매달아 몽둥이로 구타하는 혹독한 고문에 못 이겨, 박씨는 허위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물증은 없었고, 조작된 증거와 자백이 전부였다.
검찰도 법원도 이 강요된 진술을 그대로 범죄사실로 인정했다. 1심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고, 고법과 대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17년을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그는 김대중 정부 출범 후인 98년에야 대통령 특사로 풀려났다.
세상은 바뀌고 대통령이 다섯 번 교체됐지만, 박씨 일가는 여전히 '가족간첩단'의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이 같은 박씨의 사연은 2007년 김희철 감독의 독립 다큐영화 '무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27년이 지난 올해 6월 드디어 법원의 재심 결정이 내려졌다. 13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조병현)는 간첩, 간첩방조, 국가보안법위반, 반공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박씨와 박씨의 어머니 등 일가 5명에 대한 재심사건에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박씨는 재판 이후 "기쁘고 무죄를 받게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며 "군사정권 시절 국가로부터 억울하게 고통받은 사람이 많은 만큼 국가가 명예회복에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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