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은 인구의 90%가 동쪽 해안에 몰려 있다. 1822년 포르투갈에서 독립하기 이전부터 프랑스와 네덜란드 등의 침입을 받다 보니, 수도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내륙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자연스레 제기됐다. 당시엔 해상 침입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적 요인이 컸던 셈이다. 실제 수도 건설은 1956년 1월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대통령에 당선된 쿠비체크에 의해 추진됐다. 이때는 안보 요인보다 국가 균형발전과 내륙 개발 목적이 더 강했다.
하지만 그의 야심 찬 계획은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행정수도 예정지인 브라질리아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1,148km나 떨어진 오지에 위치했다. 관료와 판ㆍ검사 등 기득권층이 황토의 고원지대로 이주하는 걸 반겼을 리 없다. 많은 사람들은 쿠비체크의 재임기간에 수도가 완성되지 못하면 차기 집권자가 공사를 중단시켜 폐허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그 당시 브라질에서는 차기 집권자가 전임자의 개발계획을 백지화하는 일이 흔했다. 쿠비체크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3년 만에 수도 건설을 끝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브라질리아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최근 브라질리아를 행정수도 건설의 실패 사례로 꼽았다. 도시 지원 및 산업 기능이 부족하고 주말엔 도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난다는 이유에서다. 짧은 기간에 상징적인 도시를 건설하다 보니 보행공간이 부족하고 교통 혼잡 등의 문제가 발생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세계은행은 브라질리아를 '브라질에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가진 도시 1위'로 꼽았다. 코트라도 보고서를 통해 '단순한 행정도시에서 상업 중심지로 변신하고 있으며, 물류 여건과 인프라, 노동력 등이 매우 뛰어난 중서부 지방의 중심도시'라고 평가했다. 이 정도면 '대성공'은 아니어도 '실패' 소리를 듣지는 않을 성싶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북한의 장거리 포 공격에 취약한 서울의 안위가 항상 걱정이었다. 충남 천안과 논산, 조치원 지역을 행정수도 후보지로 검토한 배경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걸었다. 위헌 판결로 성격은 다소 변질됐지만, 그는 야심 차게 행정중심도시 건설을 밀어붙였다. 여기까지 보면 세종시와 브라질리아는 닮은꼴이다. 차이라면 임기 내 세종시 건설을 끝내지 못한 것이다. 기득권 세력이 수많은 토론과 여야 합의로 만들어진 법안까지 무시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수도권 과밀 해소를 위해 과천과 대전에 제2ㆍ3 정부청사를 건립했다. 그 당시 보수세력 누구도 '행정 비효율'을 거론하며 결사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행정수도 이전에서 대폭 축소된 9부2처2청을 옮기는 것인데도, '수도 분할' 운운하며 마치 새 행정수도가 생겨 수도권이 공동화할 것처럼 위기의식을 부추긴다.
정부가 계획한 세종시의 기본이념은 '행정 중심의 복합형 자족도시'이다. 기업과 대학의 지방 이전이 쉽지 않다는 역사적 경험 때문에 일부 행정기관을 선도적으로 옮겨 교육 산업 의료 등의 자족기능을 갖춘 도시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행정기관 이전을 백지화하고 과학비즈니스 도시를 만들자는 주장은 기실 기업과 대학의 팔을 비틀어 이전을 강요하든지, 국민의 혈세를 퍼부어 특혜를 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관행 무시한 졸속 4대강 사업
이명박 정부는 22조~30조원이 들어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환경영향평가를 4개월 만에 끝냈다. 생태계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4계절 조사를 벌이고 수 차례 수정을 거치던 기존 관행을 깡그리 무시한 '졸속'의 전형이다. 여권 내부에선 '다음 번 대선 전까지는 무조건 4대강 사업을 끝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국가 백년대계인 세종시가 급조됐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단군 이래 최대 토목사업'을 이렇게 서두르는 까닭은 무엇일까. 민주적 가치와 절차를 아랑곳 않는 후진적 정치 행태가 50여 년 전의 브라질을 능가한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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