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그램 <미녀들의 수다> 에 출연한 몇몇 여대생들 때문에 네티즌들이 폭발했다. 아무리 너그럽게 봐도 확실히 그들의 언행은 선을 크게 넘긴 했다. 천박한 인식과 품성을 스스로 만천하에 까발린 당사자들에게 도리어 연민의 정이 생길 정도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 더 기막힌 건 네티즌들의 '능력'이었다. 작심하고 출연학생의 과거 행적들을 온라인에서 샅샅이 찾아낸 것이다. 당사자가 필경 감추고 싶었을 온갖 부끄러운 자료들을 들추어내 퍼뜨리는 데는 채 한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이른바 '루저(loserㆍ패배자)의 난'이란다. 미녀들의>
▦네티즌들의 '신상털기' 방법은 간단했다. 이름 하나로 ID 등 개인기본정보를 찾아내고 다시 이를 활용해 온라인에 남겨진 모든 궤적을 검색한 것이다. 인적 사항은 물론 용모의 변화, 취미, 관심사, 실력, 가정환경, 심지어 인격까지도 유추해낼 수 있는 자료들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사실 무심들 해서 그렇지 현실은 이 이상이다. 필요하다면 온갖 카드, 휴대폰, PC와 도처에 설치된 CCTV 등을 잘 조합해 개인의 하루 행적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재구성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실제로 범죄수사에서 기본적으로 활용되는 방식이다.
▦도무지 어디 숨을 데라고는 없는 현대사회의 이 무서운 정보네트워크를 비유하는 용어가 팬옵티콘(Panopticon)이다. 계몽시대 공리주의사상가 제레미 벤덤이 착안한 원형감옥 팬옵티콘은 중앙의 감시탑과 이를 둘러싼 개인감방들로 구성된다. 감시탑 안에서는 감방 속 수감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다. 벤덤은 당시의 고문, 처형 등 무자비한 처벌을 대체하는 인도적 교화장치로 이를 고안했지만, 훗날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다르게 해석했다. 개인이 말살되는 현대의 감시ㆍ통제 메커니즘이 팬옵티콘과 닮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팬옵티콘에는 또 다른 함의가 있다. 죄수들은 어두운 감시탑 내부를 볼 수 없으므로 감시자가 있든 없든 불안함 때문에 규율대로 알아서 복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감시탑은 단순한 감시권력이 아니라 개인들이 고립과 불이익을 두려워해 무작정 따르는 사회적 관행, 통념으로 의미가 확장된다. 이번 일에 비춰보자면 용모지상주의, 물신주의 따위가 그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여학생들이야말로 통념의 틀에 갇힌 채 자유의지마저 잃어버린, 그러고도 그조차 깨닫지 못하는 불쌍한 수감자들이다. 하기야 이런 수감자들이 어디 그들뿐이랴마는.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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