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래프랜드 지음ㆍ유영희 등 옮김/책보세 발행ㆍ462쪽ㆍ2만2,000원
1789년 혁명 이후 프랑스의 혁명파는 국왕 루이 16세를 폐위시키고 반혁명을 획책한다는 이유로 법정에 세운다. 사형을 언도받은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21일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서 단두대의 칼날을 맞고 서른아홉 살로 삶을 마감한다. 그는 처형되기 직전 "나는 죄 없이 죽는다"는 말을 남겼다.
영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존 래프랜드는 <나는 죄 없이 죽는다> 에서 루이 16세를 비롯해 영국 국왕 찰스 1세의 처형, 뉘른베르크 재판, 도쿄재판, 밀로셰비치 전 세르비아 대통령 재판 등 국가 최고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한 재판 사례 18가지를 살핀다. 독특한 것은 저자가 피고의 편에 서서 재판을 바라본다는 점. 그래서 이 책은 패배자의 기록이요, 일종의 항소이유서가 된다. 나는>
찰스 1세는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다가 의회와 대립해 처형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저자는 그가 종교 근본주의자 즉 청교도에 의해 희생됐다고 주장한다. 군대를 장악한 영국의 급진적 청교도는 교회와 의회를 손아귀에 넣고, 구교에 기울어져 있던 찰스 1세를 '교황청의 앞잡이'로 몰아 기어코 법정에 세운다. 찰스 1세는 결국 "나는 국민의 순교자다"라는 말을 남기고 1649년 1월 30일 목이 잘렸다.
350년의 시간이 흐른 2006년 12월 30일에는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2001년 9ㆍ11테러를 겪은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지만 저자는 미국의 실제 목적이 이라크의 정권 교체였다고 강조한다. 이후 후세인을 검거하고 재판을 통해 사형을 언도하지만 그 과정에서 재판관할권 소급 등 여러 법적 문제를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들 사례를 살피면서 새 권력이 정적 제거와 입지 강화를 위해 재판을 이용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렇다고 이 책의 피고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그들을 단죄하는 법적 절차는 정당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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