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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한국의 초상화_형과 영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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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한국의 초상화_형과 영의 예술'

입력
2009.11.15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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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미 지음/돌베개 발행ㆍ584쪽ㆍ4만5,000원

연잉군이던 21세 때의 초상화 속 영조는 수척하다 싶을 만큼 호리호리한 모습이다. 신중하고 온유한 표정 속에 울적한 기색이 감지된다. 당시 그는 세자로 책봉되지도 못하고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대결, 궁중의 암투 속에서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30년 후에 제작된 어진 속 영조는 다르다. 길쭉한 얼굴과 올라간 눈꼬리 등 용모는 그대로지만, 소심한 표정은 사라지고 자신만만하고 권위적인 인상으로 바뀌었다.

국내 초상화 연구의 권위자인 조선미 성균관대 예술학과 교수는 초상화를 '형(形)과 영(影)의 예술'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외적 모습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그 배후에는 그 사람이 지닌 본질이 자리하고 있으며, 화가가 외양을 잘 파악한다면 자연스럽게 사람의 내면까지 초상화에 응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선의 화가들이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는 명제를 좌우명 삼아 초상화에 어떠한 왜곡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영조의 심리 변화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조 교수의 35년 초상화 연구를 집대성한 이 책은 왕, 사대부, 공신, 여인, 승려 등을 그린 한국 초상화의 걸작 74점을 엄선해 형식과 표현기법, 대상 인물의 삶까지 충실하게 소개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한국 초상화는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에 특히 성행해 걸작도 많이 나왔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은 역시 사대부의 초상이다. 속세를 떠난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초연한 모습, 조선 후기 문인 윤두서(1668~1715)의 옹골찬 기개, 일제에 국권을 빼앗겼을 때 절명시(絶命詩)를 남기고 음독 자결한 황현(1855~1910)의 결연한 시선 등을 초상화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저자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우리 초상화는 사실적 묘사에 치중해 융통성 없고 딱딱한 감을 주기도 하지만, 어쭙잖은 개성의 폭주가 방지되어 모든 작품이 도달한 수준의 격차가 크지 않다"며 "한국 초상화의 묘는 재현의 극에서 오는 뛰어난 표현력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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