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인수합병(M&A)시장은 매물홍수상태다. 시장은 뻔하고 매수자들도 마땅치 않은데, 새 주인을 기다리는 기업들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대부분은 외환위기 이후 당시 부실을 견디지 못해 채권단 손에 들어갔다가 정상화 과정을 거쳐 인수자를 찾는 기업들. 원래 일정대로라면 지난해부터 순차적으로 M&A시장에 나왔어야 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매각작업이 올스톱됐고, 결국 경제ㆍ시장상황이 호전되자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형국이다.
조 단위 규모만 5~6건
13일 금융계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내년에 시작할 크고 작은 M&A물건 가운데 예상가격이 1조원이 넘는 '대물(大物)'급만 대여섯 건에 이른다.
금호아시아나에 인수됐다가 그룹 자구차원에서 다시 매물로 나온 대우건설은 18일 본입찰을 마감한다. 당초 중동 국부펀드와 국내외 사모펀드 등 4곳이 인수후보로 거론됐지만, 이중 2개의 사모펀드는 인수 능력이 부족해 현재는 중동국부펀드를 포함해 2곳만 유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떤 경우든 펀드자본으로 넘어가는 것은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자산관리공사(캠코)가 최근 매각자문사와 회계ㆍ법뮬자문사 선정 등 매각절차를 개시한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와 한화 등이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건설업계 사상 최대의 M&A물건으로 평가받는 현대건설은 내년 중 매각절차가 개시될 예정인데, 현대그룹 현대ㆍ기아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등 범 현대가가 인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하이닉스는 효성의 인수철회 후 채권단이 다음달 재입찰을 받는 방안을 논의키로 했지만, 현재로선 장기표류가 불가피해 보인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애초 효성밖에 인수의향을 보인 곳이 없었는데 새롭게 뛰어들 대기업이 있을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화가 중도에 인수포기를 선언했던 대우조선해양은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재매각을 공식화한 상황. 하지만 당시 한화와 경쟁했던 포스코, GS, 현대중공업등이 지금은 모두 소극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그나마 조선업황도 점점 나빠지고 있어, 조기 매각성사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수천억원대의 '중간급'매물도 좀처럼 시장에서 소화가 안 되고 있다. 대우일렉트로닉스는 2006년부터 매각을 추진, 해외자본과 세 차례나 협상을 진행했으나 모두 결렬됐다. 쌍용건설도 지난해 동국제강이 인수의사를 접은 뒤, 내년 재매각을 시도중이다.
대기업은 관심 없고 중견 그룹은 능력 안 돼
M&A 시장에 매물만 쌓이고 인수 후보는 찾아볼 수 없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인수 능력이 있는 그룹은 관심이 없고, 관심이 있는 중견 그룹은 조달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삼성, LG 그룹은 인수 여력이 충분하지만, 외형을 키우기 보다는 오히려 내부 계열사들 중 중복되는 부문을 통합하는 식으로 내실을 다지고 있다.
대신 금호아시아나, 유진, 대한전선, 웅진 등 중견그룹들이 지난 수년 동안 M&A의 새로운 '큰손'으로 부상했다. 외형을 키워 상위권 그룹으로 도약해 보려는 의도였으나 자금력이 부족해 무리한 차입을 동원한 인수를 시도했다가 재무구조가 나빠져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를 겪었다.
정부도 이런 M&A 시장 구조상 자칫 '해외자본의 놀이터'가 될 수 있음을 우려하는 듯하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이와 관련, 구조조정 매물을 매각할 때 "가격에 매달리지 않고 인수후보의 다른 조건을 중시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차제에 정부가 '시장조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급하지 않은 매각은 늦추고, 매각 주체들도 매물을 내놓은 일정 등을 조율해야 한다는 것.
대부분 매각 주체가 산업은행, 정책금융공사, 자산관리공사 등으로 한정돼 있으므로 얼마든지 이 같은 '조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상용 연세대 경영대학장은 "지금 매물을 쏟아내 봤자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 번만 참았다가 좋은 시기를 봐서 순차적으로 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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