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 라인(Lip Line) 개방."
9일 오전 10시30분, 경기 광주시의 특수전교육단 내 격납고 앞. 커다란 코끼리 모양의 기구(氣球) 앞에 도열한 장병 30여명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기구의 '립 라인'은 사람으로 치자면 숨줄과 같은 기관. 헬륨 가스가 가득 찬 기구에서 마지막 호흡이 빠져나오면서 2년 간 특전용사들과 함께 한 창공에서의 가슴 벅찬 기억도 하늘 너머로 사라졌다.
군대에선 장병만 퇴역을 하는 게 아니다. 9일 엄숙하게 진행된 퇴역식은 '강하 기구 24호기'를 위한 자리였다. 길이 28.4m에 커다란 귀와 코 모양 덕분에 '하얀 코끼리'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기구는 특전용사들에게는 전우와 다름없었다.
하얀 코끼리는 특전사 대원 등 육군 특전용사들의 강하 훈련에 사용되는 기구다. 1984년 특수전교육단에 처음 도입돼 그 동안 배출한 특전용사만 41만여명에 달한다.
통상 항공기에서만 강하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에 비해 기상의 제약을 덜 받고 비용이 덜 드는(항공기 연료의 100분의1) 장점 때문에 하얀 코끼리는 특전용사들의 강하 훈련에 효자 노릇을 해 왔다. 24호기는 지난 2년 간 300m 상공에서 1만2,000여명의 특전용사의 강하 훈련을 담당했다.
장군 퇴역식에서나 볼 수 있을 '이력 보고'가 이어졌다. "병사 한 명의 복무 기간과 같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한 전우로 생각하기에 기구의 명예로운 퇴역을 앞둔 지금 사랑하는 전우를 보내는 기분으로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비록 감정이 없는 물건에 불과하지만 특전맨들의 가슴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기구과장 박경호(49) 준위은 "2007년 12월 22호에 대해 퇴역식을 처음 시작한 이래 이번이 강하 기구에 대한 세 번째 퇴역식"이라며 "그 동안 1만1,992명의 강하를 무사고로 지원한 24호의 활약에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진성훈 기자 blue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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