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도 예산초과다. 장바구니를 들고 나설 땐 분명히 필요한 물품에 가격대까지 조사해 넣은 '구매 리스트'를 준비했건만 지출액이 예상보다 너무 많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치위생사들에게 교육을 받았다며 흰 가운에 치아 모형까지 들고 나온 '구강컨설턴트'들 앞에서 지나치게 오래 머물렀다. 4단계로 관리하는 구강관리 용품이라며 소개하는 게 믿음직스러워 선뜻 구입했지만 가격이 비싸다.
계획에 없던 품목도 있다. 조그만 LCD창에서 흘러나오는 '소녀시대'의 노래를 흥얼거리던 초등학생 딸 아이가 바나나맛 우유를 사달라고 어찌나 조르던지…. 6개 묶음 제품을 3팩이나 산 것은 과했던 듯싶다."(주부 A씨의 가계부 메모 중)
늘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갑갑한 가계부. 사실 A씨처럼 소비자가 자책할 일은 아니다. 이는 경품 제공, 전문가 조언, 시연 이벤트 등의 매장 내 프로모션, 즉 인스토어(in store) 마케팅이 날로 진화해 가는 탓이다.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구매가 이뤄지는 현장에서 소비자에 접근하는 방식이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미국의 가공식품 제조업체 협회(GMAㆍGrocery Manufacturers Association)가 딜로이트의 컨설팅을 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구매 결정의 70%는 매장 내에서 이뤄진다. 또 구매자의 68%는 매장에서 충동적으로 브랜드를 결정하며, 브랜드 충성도를 지닌 소비자는 5%에 불과했다. 기업은 TV, 지면 광고에 노출된 소비자(Consumer)와 유통업체를 방문한 '쇼퍼'(Shopper)를 다른 마케팅 대상으로 본다는 이야기다.
인스토어 마케팅의 기본은 연관 진열이다. 본 진열대 상품과 연관된 상품을 함께 배치해 구매를 유도한다. 최근 홈플러스는 흡사 빨랫줄을 연상시키는 클립스트립(Clip strips)을 도입했다. 진열대에 줄을 걸고 클립으로 줄에 상품을 진열하는 방식이다. 세제 옆에 클립스트립으로 진열한 세탁망, 라면 코너에 놓은 찌개용 건버섯 등이 가시성을 높였다.
이마트는 8월 일반 요리 서적의 절반 사이즈인 '요리핸디북'을 출시, 조미료ㆍ채소 등 식품 진열대 곳곳의 자투리 공간에 함께 놓았다. 이마트는 요리핸디북이 출시 첫 달인 8월에 1만권, 9월과 10월에도 각각 2만권 이상 팔리자 이달부터 스포츠, 인테리어 등 분야를 확대했다.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등장한 LCD모니터 동영상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7~10인치 LCD 모니터를 진열대에 부착해 상품 정보를 전하는 것으로, 이마트는 제조업체 브랜드뿐 아니라 자체 브랜드(PL) 제품까지 이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영상을 통한 판촉은 시식을 통한 프로모션과 비교해 CM송 등 청각 효과가 뛰어나다.
전국 점포 1,000여 개 진열대에 LCD 모니터를 설치한 홈플러스는 올 들어 이 중 200대에 고객이 간단한 터치로 세부 정보를 확인하도록 쌍방향(interactive)성 기능을 추가했다.
아예 매장을 대대적으로 고치는 경우도 등장했다. 롯데마트는 이달 초 서울역점의 가전 코너를 고객이 직접 써 보고 구매할 수 있는 체험형 매장으로 새로 꾸몄다. 면적을 2배로 넓히고 주요 타깃으로 설정한 20~30대가 선호하는 디지털 가전의 품목 수도 2배로 늘렸다.
롯데마트측은 매장 개편 이후 초반 매출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월등히 높아, '윈도쇼핑(window-shopping)족'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인스토어 마케팅의 고전은 '1+1' 등의 경품 행사지만, 단순한 '공짜마케팅'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최근 생활용품 제조업체들이 독특한 매장 프로모션 구상에 힘을 쏟는 것도 그래서다.
CJ라이온은 얼마 전 구강관리용품 브랜드 '덴터시스템'을 출시하면서 대형마트 등에 '구강 컨설턴트'를 파견했다. 유니레버코리아의 차 전문 브랜드 립톤은 올해 여름 서울과 경기 지역 주요 대형마트에서 '립톤 아이스티 믹스 칵테일 쇼'를 진행했다. 바텐더가 제품을 이용해 칵테일쇼를 진행, 다양한 음료를 만들어 주는 이색 시음 행사다.
여준상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TV 등 전통 미디어에 무관심한 젊은 소비층이 실질적 구매 세대가 되는 10~20년 후가 되면 인스토어 마케팅의 중요성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며 "시각과 청각효과 외에 '적색고기에 레몬향을 분사하는' 등 후각이나 촉각 등을 좀 더 극적인 방식으로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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