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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타미플루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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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에세이] 타미플루 유감

입력
2009.11.15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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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의 어린 아들이 신종 플루로 사망한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숨진 뒤에야 신종 플루 확진 판정을 받는 바람에 항바이러스제 투약 시기를 놓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그 동안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 걱정되어 삼갔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종 플루 (H1N1) 바이러스는 계절독감과 마찬가지로 RNA 바이러스이다. 해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그 해 유행할 계절독감 바이러스 종류를 발표하고, 이를 조합해서 독감 백신을 제조할 것을 권고한다. 독감 백신을 해 마다 새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독감 바이러스가 RNA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RNA는 DNA와 달리 분자적 구조상 돌연변이율이 높다.

독감 바이러스와 비슷하다지만 신종 플루 바이러스는 분명 새로운 것이다. 그러나 언론이 연일 신종 플루 사망자 수를 보도하며 국민을 공포 속으로 몰고 가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는 이미 사촌격인 바이러스에 길들여져 있다. 또 가만히 들여다 보면 신종 플루 자체가 사망 원인인지 분명치 않은 경우도 많다.

신종 플루가 창궐한 지난 6개월 동안 해외학회 참석을 위해 3차례 유럽 영국 호주에 다녀왔다. 모두가 우리와는 달리 차분했다.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신종 플루가 위험성이 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타미플루의 내성 등에 관해 온갖 떠도는 말을 여과 없이 전해 국민을 신경쇠약 지경까지 몰고 간 언론과, 타미플루 처방을 지나치게 통제하고 무리하게 거점 병원을 운영하는 등 초기 대응에 실패한 보건 당국에 유감이 있을 따름이다.

생물학자인 나도 신종 플루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타미플루의 작용 원리를 찾아본 뒤 보건 당국의 대응과 언론 보도에 의문이 생겼다. 타미플루에 대한 내성이라는 것이 과연 약 몇 알 먹고 그렇게 빨리 생길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확진 전에 타미플루를 복용하면 내성이 생길 수 있다는 연구 사례가 학술지에 보고된 적이 있지만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다.

타미플루는 A형과 B형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갔을 때 바이러스가 숙주세포 내에서 퍼져나가는 데 필요한 효소 (neuraminidase)의 작용을 저해하는 화합물이다. 따라서 이 약은 바이러스 감염 초기에 먹어야 효과가 있다. 그 이후에는 효과가 없다. 따라서 내성 걱정을 하기보다 때를 놓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투약하는 것이 현명하다.

여덟 살 딸 아이가 "바이러스가 몸 안에 들어오면 바로 아프냐"고 물었다. 물론 아니다. 몸이 아프다고 느끼려면 바이러스가 몸 안에서 발현되어야 하는데, 적어도 24시간 이상 걸린다. 이때부터 우리 몸의 면역계가 대항하기 시작해 열도 난다. 따라서 타미플루의 가장 효과적인 작용 시점은 늦어도 열이 나고 아프기 시작할 때이다.

지금 대형 병원들은 밀려오는 독감 증세 환자들의 신종 플루 확진 검사를 하느라 다른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 이는 넌센스이다. 대학 병원과 대형 병원의 의료진은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데 전력해야 한다. 항바이러스제 처방이 신종 플루 치료의 핵심인 만큼, 독감 증상은 집에서 가까운 병원에서 먼저 대응하는 것이 옳다. 처음부터 이렇게 대처했다면 혼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타미플루와 예방 백신에 관한 과도한 공포심은 언론이 경쟁적으로 괴담과 음모론 등 선정적 기사를 쏟아내고, 보건 당국이 부화뇌동한 탓이 크다.

이현숙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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