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는 사건과 사연과 굴곡이 많다. 그 가운데는 한 개인의 죽음이 사회를 크게 흔든 것도 있는데 전태일의 죽음이 대표적이다.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전태일은 29년 전 이즈음, 1970년 11월 13일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자신을 불태웠다. 재단사로서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제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한 젊은이가 분신한 것은, 성장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는 무자비한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저항이었고 인간을 억압하는 족쇄를 깨려는 인간해방의 선언이었다. 그가 분신한 뒤 우리 사회는 한동안 노동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듯 했지만 강압적인 정치사회체제는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을 의향이 애초부터 없었다.
그가 죽은 지 13년이 지난 1983년 여름 부산역 앞에서 우연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전태일기념관건립위원회가 엮었다고 돼있던 이 책은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분신한 아들 전태일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우는 사진을 표지로 썼다. 당시 그 책을 읽고 억압적이고 불균형적인 사회구조에 분노하고 한 젊은이의 숭고한 희생정신에 머리를 숙였다. 물론 책을 읽기 전에도 그에 대해 단편적으로 들은 것은 있었다. 하지만 전태일이 태어나서 분신할 때까지 22년의 삶을 차례로 정리하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의 일기, 증언, 그가 만든 설문지 등이 전태일을 생생하게 복원시켰다. 어느>
그 뒤 출판사는 <전태일 평전> 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다시 냈고 저자가 고 조영래 변호사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박광수 감독은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로, 작가 박태옥과 만화가 최호철은 만화 <태일이> 로 그를 다시 살려놓았다. 태일이> 아름다운> 전태일>
그 사이 부산역 앞에서 산 그 책은 어느덧 색이 바랬고 글씨가 작아 요즘은 펼쳐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 어린 시다와 미싱사들을 위해 자신을 던진 전태일의 정신은, 승자독식주의가 판치는 지금 더욱 더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전태일이냐며 지겨워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분신 29주년에 즈음해 그를 다시 읽는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작은 반성이자 애도로 볼 수 있겠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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