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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장애 체험에서 깨달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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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장애 체험에서 깨달은 것

입력
2009.11.1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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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언제 다시 올까요?" "안 보이면 오세요."

황당해진 나는 담당의사가 나간 후 레지던트에게 물었다. "실핏줄이 터지면 어떻게 알 수 있지요? ""아마 사물이 뭉크처럼 보일껄요."

뭉크의 그림 <절규> 를 의미하는 것일 게다. 맞다. 지난번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하루 내내 사람들이 뭉크 그림처럼 보였지. 얼마나 공포스러운 하루였던지.

'객관적 인식'은 없다

뭉크가 망막 이상으로 <절규> 와 같은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닌가 의심한 적이 있다. 고호가 말년에 그린 그림의 강렬한 사물 경계선과 색채도 오랜 정신과 치료 이후 사물들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일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화가들이 그린 기울어진 의자, 비정상적으로 작은 책상, 이런 것들은 혹시 그들 눈에 그렇게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그린 것은 아닐까.

오래 전 학술대회 발표 때의 일이다. 파워포인트를 사용했는데 자료가 스크린에 뜨자 무대를 제외한 조명이 모두 꺼졌다. 객석의 관객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나는 보지 못하는 자의 공포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암흑 속에 혼자 고립된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자 조금 익숙해졌지만 상대를 보지 못한 채 허공을 향해 이야기 해야 했던 경험은 아직도 두려움으로 남는다.

나는 황반변성이라는 질병을 가지고 있다. 서구에서는 노인 실명율 1위인 병이다. 이로 인해 두 눈 모두 사물을 정확히 보는 능력을 일부 상실했다. 직선이 곡선으로 보이고 사물의 크기에도 변화가 생겼다. 오른쪽 눈을 가리고 보면 왼쪽을 가린 것보다 현저히 작게 보인다. 날씬하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한쪽은 뚱뚱하게 보이고 한 쪽은 날씬해 보이고.

결과적으로 나는 사물의 정확한 크기를 알지 못한다. 아마 두 눈의 정보가 적절히 조합되어 절충된 중간크기쯤으로 인식하지 않을까. 이런 변화를 통해 깨달은 것이 있다.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 인식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육의 창(窓)인 눈도 사물을 달리 보이게 만드는데, 각자의 감정 정서 생각 등을 거쳐 나오는 우리의 인식이 결코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후 나는 선글라스 족도 사랑하게 되었다. 무슨 폼이라고 흐린 날에도,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걸치고 다니는 아줌마들은 무언가? 연예인들은 알아보는 사람이 많으니까 사생활보호 차원에서 그렇다고 치고, 무대에 선 가수들은 그날 컨셉을 위한 코디의 일부라고 치자. 하지만 나는 이제 이들이 망막에 손상을 입었거나, 백내장 끼가 있거나, 라식 수술을 잘못해 눈부심이 있거나, 쌍꺼풀 수술을 했거나... 그런 사람들일 거라고 방어해 줄 수 있다. 사계절 전천후 선글라스 애용자가 된 나는 어떤 이유에서건 선글라스 쓴 사람들을 사랑한다.

2~3시간 색깔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그 묘한 기분은 당사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힘들다. 연두색에 가까운 짙은 노란색이 미색에 가깝게 희석되어 보였다. 나는 이제 연두색 일반버스 옆에 대문짝만하게 쓴 Green의 'G'가 결코 디자이너의 우매한 결정이나 지나친 배려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한국 남성의 약 5%가 붉은색과 녹색을 구별하기 힘든 색각 이상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버스 위의 BㆍGㆍRㆍY와 같은 정보는 불필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의 편견이 쌓는 벽

우리가 가진 것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일 경우 그것을 잃기 전에는 소중함을 알기 어렵다. 그제 11월 11일은 <눈의 날> 이었다. 4일은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사용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점자의 날> 이었다. 이번 주말은 컴퓨터와 게임기 끄고 각자의 눈에 휴식을 선사했으면 좋겠다. 눈 건강을 생각하면서 우리 주변이 보지 못하는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착한'환경인지, 그리고 우리의 편견이 그들에게 높은 벽이 되지는 않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홍순혜 서울여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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