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동네 경제를 교란시킨다는 여론이 점증하고 있다. 그런데 막을 도리가 마땅치 않단다. 무정책이 정책이라니 동네 자영업자로선 울분만 가득할 뿐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유통관리와 무정책이 빚어낸 동네경제 참사 현장이 여기저기 그득하다. 낙엽이 뒹구는 시절인 탓에 동네 슈퍼 모습은 더욱 을씨년스럽다.
방송 현장도 비슷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IPTV로 대표되는 거대 유통망이 플랫폼의 이름으로 방송에 들어서면 방송계에서 절대 강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정책은 IPTV의 절대적 힘을 제어할 고민 없이 그것을 육성,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표할 뿐이다. 클수록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습에서 기업형 슈퍼마켓을 방임하는 태도를 읽어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뻔히 예견되는 유통의 힘, 횡포가 드러나는 곳은 또 있다. 영화판이다. 지난 주 장나라 주연의 '하늘과 바다' 제작자가 극장이 벌이는 교차상영 횡포에 반발하며 영화를 거둬들였다. 특정 영화를 여기저기 끼워넣고 상영하는 탓에 관객을 만날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항의였다. '퐁당퐁당 상영'이라고도 말하는 교차상영으로 저예산 한국 영화가 상영 기회 자체를 갖지 못하고 차별을 당한다며 폭발한 것이다.
이어 '집행자'라는 저예산 영화의 제작진이 교차상영에 항의하며 삭발을 단행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관객이 영화를 평가하기도 전에 유통에 불과한 극장이 영화를 평가해버리는 횡포에 영화인들이 폭발한 사건이다. 입소문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오랜 관행에 비추어 보면 이를 횡포라 해도 과한 것은 아닌 듯하다. 영화인들이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오래 전이지만 여전히 거대 유통의 힘에 정책은 수수방관해왔고 급기야 '하늘과 바다' '집행자'의 극한 사건에까지 이르렀다.
어느 틈엔가 크지 않으면 대접받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 엄청난 공을 들였다 하더라도 모든 작은 것은 외면당한다. 기업형 슈퍼마켓, 플랫폼 방송사업, 거대 영화 유통업은 그동안 지역경제, 문화산업 종사자들이 오랫동안 차근차근 형성해둔 성과를 큰 덩치로 일거에 먹어버리려 한다. 정책이 수수방관하거나 추동해주고 있으니 날개를 단 듯 전 영역으로 대물들이 진격해오고 있다.
대물 숭배주의가 가져올 사회적 파탄을 여러 국가가 이미 경험하고 있다. 대물이 작은 것을 챙겨줄 것이라는 '떡고물 경제론'도 파산 직전에 있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그런 타산지석 교훈이 통하지 않고 대물 숭배주의가 정책으로 더 세게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작기 때문에 억울한 눈물을 훔쳐야 하는 일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 지역경제든, 방송판이든, 영화판이든 예외가 없다.
골목 어귀에서 피켓을 들어야 하고, 영화 필름을 극장으로부터 거둬들이고, 삭발을 감행하고, 단식을 행해야 정책이 조금이라도 귀를 열 거라는 문법에 익숙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 모든 작은 것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밖에 없음을 학습해가고 있다. 정책은 분열하지 말고 힘을 합치자며 수많은 립 서비스와 임시방편을 내놓을 뿐이다. 그래서 한국의 골목, 극장, 텔레비전 화면 모두 전보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을씨년스러운 모순적 기운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골목, 자신의 문화판에 더 애정을 가져왔던 작은 것이야말로 지금의 대물이 있게 만든 기반이었다. 하지만 대물은 되돌려주기는커녕 그를 괄시하고 있다. 이럴 때야말로 정책이 대물을 교정하고, 작은 것에 힘을 불어넣어 그 존재를 확인시켜 줘야 하지 않을까.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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