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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독거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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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독거처녀

입력
2009.11.1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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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두 돌이 된 둘째가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부정확한 발음으로 "꽃보다 남자"라고 말했을 땐 만감이 교차했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이 우습기도 하고 어려운 제목을 외우다니, 기특하기도 하고 벌써부터 텔레비전에 노출돼도 되나 걱정도 들었다.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늦게 보여주라는 전문가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맞벌이 부부라 아기를 친정에 맡겨둔 지 일 년이 넘었다. 친정에는 미혼의 자매들이 있다. 한참 혼기를 놓친 노처녀 중 하나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기가 무섭게 텔레비전을 켠다. 일 때문에 놓친 드라마는 다운을 받아 보기도 하는 것 같다. 이모를 좋아하는 아기는 그 옆에 붙어 앉아 덩달아 드라마를 보는 것이다. 아기도 동생도 걱정이다. 한참 뒤에 동생이 혼자 어떻게 긴 하루를 보낼지 상상만으로도 걱정이다. 여동생들과는 달리 친구들 중에는 독립해서 혼자 사는 여성들도 많다.

부랴부랴 퇴근하지 않고 느긋하게 영화도 보고 친구들과 수다도 떨고 여행도 마음대로 가고, 부러워했는데 한 친구가 불쑥 아무도 없는 집에 가기 싫다고 말했다. 그 나이의 미혼 여성을 대하는 남성들의 시선에도 상처를 받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녀가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했다. "난 독거처녀야." 독거노인의 고단함을 네가 알기나 아느냐고 누군가 쏘아부칠 줄 알았는데 우리는 잠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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