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김장철이다. 집집마다 올해 김장은 몇 포기나 할까, 돈은 얼마나 드나, 언제 담을까 주부들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맛있게 담가 둔 김장은 이듬해 날이 풀릴 때까지 주부들의 식단 걱정을 덜어 준다. 김치찌개 김치전 김치국은 기본이고 김치볶음밥 김치찜 김치비빔국수까지 맛깔 나는 요리로 변신할 수 있는 재료가 바로 김치다. 하다못해 김치라면까지.
요리사에게 김치가 특히 매력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서양식 조리법과도 멋들어지게 어울려 색다른 퓨전 요리로 탈바꿈한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 '그랑 카페'는 16~21일 '김치 축제'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퓨전 김치 요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한국과 이탈리아 맛의 어울림
이탈리아 서민들이 즐겨 먹는 빵으로 포카치아라는 게 있다. 밀가루 반죽에 올리브기름과 소금 허브를 넣고 불에 구워 만든다. '포카'는 라틴어로 불이란 뜻이다. 배한철 그랜드 인터콘티넨탈호텔 총주방장은 김치로 포카치아를 만들었다. 잘 익은 김치를 말려 잘게 썰어 넣고 다른 재료와 같이 반죽한 다음, 오븐에 구워낸 것. 씹는 맛은 분명 빵이 맞는데 희한하게 김치전을 먹고 있는 느낌이 든다.
카넬로니 역시 우리에겐 조금 생소하지만 이탈리아에선 흔한 음식이다. 얇은 만두피처럼 생긴 파스타에 고기(생선도 가능) 시금치 치즈를 얹고 둘둘 말아 팬에 구워 낸다. 여기서 고기나 생선 대신, 김치와 연어를 다져 넣으면 가볍고 상큼한 맛의 카넬로니로 바뀐다. 접시에 놓인 자태는 영락 없는 이탈리아 음식이다. 눈을 가까이 대고 유심히 들여다봐야 김치가 들어 있구나 알 수 있다.
이탈리아 음식은 한국인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들이 특별히 거부감을 갖지 않는다. 특히 토마토소스에서 우러나는 새콤함은 세계인에게 널리 사랑받는 맛이다. 김치를 이탈리아 요리와 접목시킨 배 총주방장의 아이디어는 바로 이 점에서 착안됐다. 외국인들이 김치에 대해 혹시 가질지도 모를 생소함이나 거부감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는 얘기다.
기왕 접목하는 김에 이탈리아 요리의 대명사인 스파게티와 그라탕에도 김치를 넣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기본적인 조리 과정에서 다진 김치를 볶아 추가해 주면 그만. 스파게티는 면까지 볶은 다음, 완성 직전에 취향에 따라 김치국물을 살짝 뿌려도 좋다. 김치 덕분에 굳이 피클을 곁들이지 않아도 될 만큼 느끼함이 덜하다.
"특유의 냄새도 세계화 가능"
한국 음식 하면 뭐니뭐니해도 김치다. 최근 한식 세계화의 바람을 타고 김치를 외국에 알리자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에선 김치의 매운 맛과 독특한 냄새를 외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량해 보자는 의견도 나온다.
그러나 배 총주방장은 김치의 전통적인 맛과 향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든지 세계화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특유의 시큼한 냄새를 내는 발효 유산균 덕분에 김치가 건강식품으로 손꼽히는 것"이라며 "향이 강한 인도ㆍ태국ㆍ멕시코 요리도 이미 세계에 널리 퍼진 걸 보면 김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서양의 식탁에는 보통 메인 요리에 샐러드나 피클이 따라 나온다. 한국식으로 치면 반찬인 셈이다. 메인 요리의 진하고 느끼한 풍미를 중화하면서 입안을 상쾌하게 해 식욕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 갓 담은 겉절이가 샐러드나 피클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게 배 총주방장의 주장이다. 묵은 김치는 따뜻한 요리에, 갓 담거나 설익은 김치는 찬 요리에 주로 사용하는 것도 김치 냄새에 민감한 외국인의 입맛을 배려하는 센스란다.
다만 한국식 김치 요리만 고집하며 따라오라고 하면 김치의 세계화는 더딜 수 있다는 것. 배 총주방장은 "외국인이 김치를 이용해 자기들 방식으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번 김치 축제에 선보일 보르도 동치미와 닭가슴살 김치말이도 이 같은 맥락에서 개발됐다. 보르도 동치미는 보라색을 띠는 서양 무인 비트로 만든 동치미. 보통 동치미처럼 희고 투명하지 않고 와인 빛을 띠는 데서 붙인 이름이다. 닭가슴살 김치말이는 가정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서양식 김치 요리. 얇게 저민 닭가슴살에 다진 김치와 치즈를 얹어 둘둘 말아 익히면 된다.
김치 축제 첫날인 16일에는 영화 '식객2: 김치 전쟁'의 두 주인공 영화배우 진구 김정은도 참석할 예정이다.
임소형 기자
■ 후식과 술안주로도 끝내줘요
후식과 술안주 만드는 데도 김치는 제격이다. 김치 디저트는 알싸한 향이 살짝 감돌아 식사 후 찜찜한 입안을 개운하게 해 준다. 빵이나 과자 만들 때 많이 쓰는 젤라틴을 물에 풀어 중탕한 뒤 끈적끈적할 정도로 녹여 동치미에 넣고 냉장고에 약 30분 간 넣어 두면 살짝 굳는다. 이름 하여 동치미젤리다. 특유의 맑은 빛깔이 개운함을 더한다.
계란 우유 설탕을 섞어 오븐에서 15분 정도 구우면 푸딩이 된다. 굽기 전 김치국물을 살짝 떨어뜨려 섞으면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김치푸딩으로 바뀐다.
김치 안주를 만들 때 포인트는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느낌. 신김치의 배추잎을 공기 중에 펼쳐 두고 바싹 말리면 된다. 술자리에서 이거 하나면 오징어나 노가리 저리 가라다.
포기김치를 썰고 나면 단단한 끝 부분(중륵)만 남는다. 뒀다 김치찌개 국물 낼 때 넣거나 아니면 그냥 버리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묵은 김치의 중륵 부분은 양념이 잔뜩 밴 채 약간 물러져 있어 버리기 아깝기도 하다. 이럴 때 마늘과 함께 잘게 썰어 볶은 다음, 칼집 낸 소시지에 채워 넣으면 안주 한 접시는 거뜬히 나온다.
임소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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