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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지인이 깨뜨린 찻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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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지인이 깨뜨린 찻잔

입력
2009.11.12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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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하는 소리와 함께 '제발, 그 컵만은 아니기를'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집에 온 손님과 차를 마시다가 잠시 전화를 받는 사이 생겨난 일이었다. 손님과 마시던 차탁 위에는 몇 개의 잔이 놓여 있었다. 물잔과 찻잔. 찻잔 중에서도 여행 중에 '모셔 온' 잔과 얼마 전 구입한 새 잔이 있었다. 순간 차라리 새 것이 깨졌으면 했는데, 늘 그렇듯이 상황은 내 마음과는 반대로 벌어졌다.

몇 년 전, 여행 중 우연히 들른 허름한 중고 생활 용품점에서 찾아 낸 커플 찻잔 중 하나가 혼자 깨진 것이었으니…. 여행길에 터벅터벅 걷다가 고놈의 찻잔이 눈에 띄어 발을 멈추고, 한참을 고민하고, 찻잔의 나이를 묻고, 흥정을 하고, 마침내 구입하기로 결정해 신문지로 두껍게 포장해서 비행기 안까지 고이 모셔 온 일이 일순간 '빨리 보기 8배속' 쯤으로 스쳐 갔다. 우리 돈으로 1만원 남짓한 가격의 찻잔이었지만 컵 두 개, 컵을 받치는 접시 두 개는 세계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물건이었으니 남들 보기에는 보물선에서 건져 올린 다이아몬드라도 모셔 오는 모양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집에 가져와서는 매일매일 그 찻잔에 차를 마셨다. 지난 2년 반 동안 매일 보아 온 찻잔. 찻잔 손잡이를 쥘 때마다 여행길이 떠올랐고, 중고 제품을 새 것처럼 간수하던 깐깐한 주인장이 떠올라서 좋았다. 그런데 이렇게 한 순간에 깨져버린 것이었다.

애지중지 모은 그릇이 깨져 버리는 일은 종종 벌어진다. 나의 실수든, 남의 실수든 깨지는 재질로 만들어진 물건이기에 천년만년을 견디지는 못한다. 언젠가는 깨질 것을 알면서도 또 하나 둘 사 모으고 정을 붙이게 된다. 비단 그릇의 문제는 아니다. 애완견이든, 벤자민 화분이든 영원히 함께 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물을 주고 사랑을 주며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 사는 동안의 일체가 다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넓은 의미로 생각하다 보면 놀러 왔던 지인이 깨뜨린 찻잔이 덜 아쉽게 느껴진다. 언젠가 깨질 물건을 구태여 집에 들이고, 정을 붙인 내 잘못이다. 또 지난 2년 반 동안 그 찻잔으로 기쁨을 누렸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 언젠가는 지나가 버릴 내 젊은 날, 깨진 그릇이나 걱정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박재은 푸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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