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를 '투표 권한대행' 이나 '투표 직무대행'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요즘 여론조사가 선거뿐 아니라 행정 분야에서도 투표를 대신해 중요한 의사결정의 잣대로 쓰이는 경우가 잦아지자 이런 말까지 나온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해당 시∙군 주민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수원∙화성∙오산 등 4곳을 행정구역 자율통합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행안부는 지방의회 의결을 거쳐 확정한다는 방침이지만 경기도 등은 "주민투표로 통합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여론조사가 주민투표를 대신할 수 있느냐 하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론조사 논란은 며칠 전에도 있었다. 지난 주말 비슷한 시점에 세종시에 대한 국민 여론을 조사했으나 결과는 제각각이었다. A신문 조사에 따르면 세종시 수정 추진 찬성이 59.2%, 원안 찬성이 23.2%였다. 반면 B신문 조사 결과 수정 찬성은 35.7%에 그쳤으나 '원안과 원안+∝'를 지지하는 응답은 모두 57.8%에 이르렀다. 윈지코리아 조사에 따르면 수정 찬성이 46.4%로 원안 찬성(33.9%)보다 약간 더 우세했다.
이처럼 들쭉날쭉한 조사 결과에 대해 '폴러코스터' (pollercoaster)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들도 있다. 롤러코스터에 여론조사를 뜻하는 'poll'을 붙여 만든 합성어이다.
10∙28 재보선에서도 여론조사 결과는 빗나갔다. 수원 장안의 경우 여야 정당의 여론조사에서는 한나라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2~5% 가량 앞섰다. 하지만 실제 뚜껑을 연 결과 승패는 뒤집어졌다.
이 같은 오류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는 우리 선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국회의원후보 공천 과정에서 여론조사 결과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는 "여론조사가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가 노무현 후보 당선의 1등 공신이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2년9개월 전 바로 이 지면에 '여론조사가 대선 과정에서 빅브러더(big brother ∙大兄) 처럼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칼럼을 썼다. 우리나라처럼 여론조사가 큰 바람을 일으키는 나라는 없다. '여론조사 만능시대'를 맞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는 참고자료에 그치는 게 바람직한데도 실제 우리 정치에서는 중요한 결정의 준거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론조사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조사의 과학성을 높이고 이를 공정하게 보도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언론 보도 또는 공표를 위해 선거나 정책에 관한 여론조사를 하는 기관은 특정 정파에 기울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 일부 조사기관 운영자들이 대선후보 캠프를 도와주거나 특정 정당 출신이 직접 조사기관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 조사의 과학성을 높일 수 있도록 최소한의 조사 시설 및 인원도 갖춰야 한다. 특히 응답률이 5% 가량에 불과한 전화자동응답장치(ARS) 조사는 조사원 전화조사보다 정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ARS 조사 결과 보도는 자제하는 게 좋다. 착오나 조작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조사기관이 조사자료 일체를 선거법 규정대로 6개월 동안 보관해야 한다. 정치권이 표본오차를 무시하고 조사 결과를 확대 해석하는 것도 삼가야 한다. 이런 요건들을 갖춰야 여론조사가 민심의 거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광덕 정치부장 kd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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