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에 의해 살인범이란 누명을 쓰고 실형을 산 60대에게 법원이 29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1980년 5월 전남 해남에서 목수일을 하던 이정근(63)씨는 5ㆍ18 시위에 참여했다가 붙잡혀 광주 상무대 영창에 수감됐다. 모진 구타가 끊이지 않던 이곳에서 그는 말뜻조차 몰랐던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계엄군은 이씨에게 느닷없이 상해치사 혐의까지 뒤집어 씌웠다. 같은 해 5월23일 고향인 영암군 신북면에서 당시 전남대 1학년생 박모씨를 10여명과 함께 둔기로 때려 숨지게 했다는 것이다.
이씨는 혐의를 부인하며 목격자와의 대질신문을 요구했지만, 되돌아온 것은 구타와 고문뿐이었다. 결국 이씨는 허위 자백을 하고 구속돼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 받고 11개월간 옥살이를 하다 이듬해 4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아 풀려났다.
살인자라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던 이씨는 2006년 11월 정부에 진실규명을 요구했고,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해 6월 이씨 사건을 '국가권력에 의한 조작사건'으로 결론 내리고 법원의 재심을 권고했다.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 장병우)는 12일 이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구금과 가혹행위로 허위자백을 했다는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며 "당시 판결서를 빼고는 사건 관련 기록 등이 없어 진실위의 기초자료 등을 근거로 원심의 유죄 판결은 잘못됐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광주=안경호 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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