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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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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지게

입력
2009.11.12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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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서양사람들의 눈에 지게는 매우 경이로운 운송수단으로 비쳤다.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르 바라도는 "양 어깨와 등의 힘을 조화시킨 창의적이고 과학적 운반기구"라고 극찬했다. 스웨덴 기자 아손 그렙스트는 "엉덩이와 등, 어깨에 무게를 고르게 전달하도록 이상적으로 고안돼 있어 보통체구의 짐꾼이 189㎏의 짐을 지고 단거리를 운반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썼다. 6ㆍ25때는 산악지형에서 보급물자를 나르는 데 지게가 유용하게 쓰였는데, 미군들은 알파벳 A자 모양의 지게를 'A frame'이라고 불렀다.

■ 지게는 양다리디딜방아(두 사람이 밟을 수 있게 만든 방아), 발무자위(발 수차) 등과 함께 우리 조상들이 만든 가장 뛰어난 농사기구로 꼽힌다. 균형을 잘 잡고 일어서면 자기 체중 2~3배의 짐을 거뜬히 나를 수 있다. 만드는 나무에 따라 제가지지게(소나무), 옥지게(참나무)가 있고, 용도와 모양에 따라서 쪽지게 거름지게 물지게 쟁기지게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문헌상 조선 숙종 16년(1690년)에 나온 어학서 <역어유해> (譯語類解)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신라 고분에서 지게를 진 인물상(토우)이 출토된 것으로 미뤄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 1970년대까지도 농촌 남정네에게 '마누라보다 등을 대는 시간이 많은' 생활필수품이 지게였지만 이제 민속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그런 지게에 대한 기억을 북한 온라인매체 '우리민족끼리'가 일깨웠다. 정부가 옥수수 1만톤을 주겠다고 제의한 것을 두고 "고작 농부의 지게에 올려놔도 시원찮을 강냉이 얼마 타령"이라고 비난한 것이다. "남조선 사람들이 어찌 세상보기 창피하고 민망스럽지 않겠는가"라고도 했다. 지난달 26일 정부가 지원의사를 밝힌 뒤 나온 첫 반응인데, 남한사회의 목소리를 빌린 형식을 취한 것은 자존심 탓일 게다.

■ 옥수수 1만톤은 이명박 정부 들어 첫 대북 식량지원 치고는 빈약한 규모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분위기도 있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많은 양의 식량과 비료를 지원받고도 되레 큰 소리치며 고마워하지도 않은 버릇을 고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작용했을 법하다. 이번은 '마중물' 성격이며 북한의 태도에 따라 규모를 늘린다지만 북한주민들의 굶주림 상황이 심각한데, 인도주의적 재난을 놓고 이것저것 따지는 것은 야박하다. 자존심만 앞세우는 북한의 자세도 물론 잘못됐다. 주는 쪽은 서툴고 받는 쪽은 뻣뻣해서 애꿎은 북한 주민들의 고통만 깊어지고 있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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