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인(건강식품)을 체험하시고 노벨상을 추천해주십시오.'
업체이름도 낯선데 제품 포장에 실린 문구가 실소를 자아냈다. 엉뚱하다 못해 불신이 밀려왔다. 직원들도 볼멘소리다. "한 엄마가 그래요. '고등학생 아들이 먹고 설사가 멎었는데, 그 글을 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안 먹으려 한다'고."
정작 사장은 자신감 충만이다. 이력을 훑어봤다. '초등학교 졸업, 독학과 체험학습, 발명가, 예상수명 169세, 장수국가 건설이 꿈.' 점입가경이다. 우리네 상식의 타래를 풀어 직조하면 약간 이상한 사람이 아니냐는 인식의 결이 나올 터.
그런데 효과를 봤다는 증언이 한둘이 아니다. 더구나 악취제거 분야만큼은 일가를 이뤘다고 주장하면서 두툼한 증거물(문서)까지 제시한다.
냄새라는 게 종이쪽에 묻어날 리 없고, 확인하려면 천상 현장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나섰다, 오직 냄새를 맡으러.
냄새 잡는 사장님?
#경기 화성시 마도면의 선일농장. 본디 반경 4~5㎞까지 미치는 돼지농장의 악취는 지상 최악이다. 일단 옷에 배면 세탁을 해도 잘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파리떼는 검은 외투마냥 돼지를 뒤덮고 있기 마련. 그런데 이 농장은 악취도 파리도 없다.
농장주 김영일(54)씨는 "작년 5월 그 업체의 미생물(SJP유산균)을 뿌리고 먹인 뒤부터 신기하게 사라졌고 민원도 사라졌다"고 했다. 농장을 일거에 망칠 수 있는 돼지의 설사도 멎었다고 했다.
#경기 시흥시 음식물자원화시설. 매일 음식물쓰레기 150톤, 분뇨 50톤이 퇴비로 만들어지는 곳이다. 분뇨를 나르는 차에선 악취가 흘러나왔지만 막상 미생물처리가 된 분뇨는 냄새가 거의 없다.
시큼한 발효냄새만 코끝을 찌를 뿐. 쓰레기 처리기사 장모(40)씨는 "미생물을 가가호호 음식물쓰레기통에도 뿌려주는데 반응이 좋다"고 했다. 예전엔 몸에 달라붙은 악취 때문에 대중교통도, 엘리베이터도 못 탔다고 덧붙였다.
어찌된 영문일까. 박세준 ㈜앤텍바이오 사장이 껄껄 웃는다. "악취는 부패로 인해 발생하는 것인데, SJP유산균이 장 내 혹은 음식물의 부패세균을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내놓은 건강기능식품 청인도 비슷한 원리(장 내 유해균 억제 및 유익균 활성)라 설사나 변비 등 장 질환에 효과가 있다는 것.
연 매출 40억원, 직원 60명의 이 조그만 회사는 실제 환경오염 및 악취방지, 미생물연구 등으로 인정 받는 생명공학업체다.
시흥시의 시설은 1997년 기술공모에서 쟁쟁한 업체들(8곳)을 누르고 1등을 한 뒤 2000년부터 위탁관리를 하고 있고, 전국 대규모(1,500두 이상) 양돈농가의 3할은 앤텍바이오 제품을 쓰고 있다. 서울대 대한아토피학회 등과 연구협력도 하고 있다.
놀라운 건 생소한 SJP유산균을 박 사장 홀로 발견했다는 것. 전공은커녕 중학교 문턱도 넘지 못한 그가 무슨 수를 썼는지 살피려면 부득불 그의 이력으로 돌아가야 한다.
발명으로 망하고 발명으로 흥하다
그는 서른 즈음까지 충북 영동에서 농사를 지었다. 1975년 처자식 먹여 살리려 무작정 상경해 소싯적 어깨너머로 배운 서화를 그렸다. 당시 장당 500원, 그것도 외상으로 넘긴 그림을 화상(畵像)은 표구에 넣어 10만원에 팔았다. 열불이 나서 직접 장사에 나섰고, 돈 벌어 집도 샀다.
80년 어느 날 거실에 앉아있는데 불현듯'지워지지 않는 물감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초등학교 졸업식 때 들은 "파커는 발명을 해서 부자가 됐다"는 내빈의 축사도 오버랩 됐다.
깨달음을 얻은 듯 무릎을 탁치고 청계천(화구상)과 의정부(염색공장)를 뒤진 끝에 결과물을 만들었다. 1억8,000만원의 빚을 졌다. 다시 장사로 만회했다.
그러나 발명은 계속됐다. 10초에 찾는 지도, 자동공압펌프 등 특허만 150개를 땄다. 상품이 된 것도, 안 된 것도 있고, 돈을 말아먹은 것도, 성공의 발판이 된 것도 있다. 부인은 박 사장이 뭐 발명하겠다고 나서면 지금도 노심초사다.
발명 덕에 신지식특허인에 선정됐고, 발명협회 초대회장도 맡았다. 수많은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특허청 특허검색시스템에 가면 전세계 발명품의 도면과 설명이 죄다 있어요. 그걸 해부하고 생각을 얹는 게 발명의 시초죠. 뭔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깹니다. 생각이 생각으로 끝나면 생각 못한 것보다 못해요. 실천으로 옮겨야죠."
그는 자신이 '괴짜'라는 세간의 평에 수긍한다. "발명은 1%의 거짓이 들어가면 바로 틀어져요. 제가 발견한 미생물은 장 내 생태계를 복원하고 축산용 항생제를 대체할 수 있어서 노벨상 감입니다(웃음). 인정을 안 하면 어때요, 소비자가 그 문구를 보고 잠시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죠."
그는 젊은이들에게 "학력이나 환경에 안주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이른다. 왜 하필 169세까지 살고 싶은 건지 물었더니 그다운 답이 돌아왔다.
"유산균 먹고 168세까지 산 동유럽 사람이 있대요. 제 유산균이 그보다 좋으니 한 살 더 살려고요." 그 셈법에 따르면 그(64세)는 아직도 이팔청춘이다.
시흥=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고영권기자 young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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