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전원의 '종구씨와 옥순씨의 불편한 권력 관계'는 삼일로창고극장의 '페미니즘 연극제' 참가작이다. 그러나 "여권 제일"을 복창하지 않는다. 남자교수와 여학생의 관계를 일반적 권력관계로 치환한 이 무대는 페미니즘의 깃발을 들고 나오는 여타 작품과 다르다. 숫제 극단측부터 "이 연극은 성추행을 다룬 극이 아니다. 그래서 재미없다"고 팜플렛에 밝힐 정도다. 성추행을 다룬 페미니즘 극만 재미있는 건 아니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살짝 감춰져 있다.
그러나 이 2인극 무대는 탈대학로 연극의 성공 사례에 속한다. 학생들과 성인 남녀가골고루 관객석에 보이는 이 무대는 교수와 여학생 간에 벌어지는 일상을 소재로 한다. 지위나 권력 대신 학점 문제가 그 관계를 보편적으로 규정하는 함수로 등장한다.
이 연극은 1993년 독일에서 초연된 '올리아나'를 각색한 것이다. 그러나 각색자(강병헌)의 능란한 솜씨 덕에 이물감이 없다. 실제로는 강승원, 김희윤의 긴밀한 앙상블 덕이다. 부인 눈치나 보는 알량한 생활인에서 근엄한 교수로 표변하는 강승원의 느물댐, 학점을 빌미로 추근대는 교수의 꼬투리를 잡고 그의 목을 죄어가는 김희윤의 몰강스러움이 벌이는 대결은 무대의 백미다.
무대는 남녀 관계를 벗어나 권력 관계의 상징으로 나아간다. 교수는 여학생의 몸을 툭툭 치며 느닷없이 친밀성을 표하며 접근을 시도한다. 학점 때문에 졸업을 못 하고 있는 여학생은 무기력하게 있지만은 않고, 강간이라며 고소장을 접수시킨다. 여학생의 반격을 꺾어보려는 교수의 강압, 억측, 회유, 애원 모습이 볼거리다. 특히 여학생의 치밀한 반격에 몰리자 마침내 쌍욕을 하기까지, 기성 세대가 붕괴해 가는 과정의 묘사가 치밀하다.
독일 보쿰대에서 15년 공부를 한 연극학 박사인 연출자 김윤걸(46)씨에게 이 무대는 한국 연극판에 대한 발언의 장이기도 하다. 김씨는 "대학로 등지의 상업 연극에 맞선 대안 공간으로서는 최고라 할 만한 삼일로창고극장의 역사성을 사랑한다"며 "진짜 소극장 무대에 걸맞는 무대를 만들려 애썼다"고 말했다. 11일까지.
'오프 대학로 페스티벌'이란 부제를 단 페미니즘 연극제는 극단 숲의 '미스 줄리'(13~20일), 극단 손수의 '그녀, 그대를 기다리며'(22~29일) 등 작지만 알찬 연극으로 이어진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