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내가 항상 동경을 품고 있는 곳이다. 뜨거운 태양과 흙먼지 속에서 피어난 그들의 역동적인 문화와 토속적인 공예품들, 그리고 이제 막 그물에서 건진 생선처럼 파닥거리는 검게 그을린 사람과 동물들.
그리고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없이 서 있던 저 킬리만자로의 만년설(萬年雪). 이 모든 것들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에게 강한 생명력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신문을 넘기다 우연히 킬리만자로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 마음속에 있는 킬리만자로가 아니었다. 신비로움을 간직해 왔던 눈들은 온데간데 없고 나이 들어 머리가 벗어진 할아버지처럼 황폐하게 '흙 거죽'을 드러내놓고 있었다. 지구 온난화가 지속될 경우 13~24년 후에는 킬리만자로의 만년설 풍경은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북극해의 빙하도 절반이나 사라졌고, 알프스의 만년설을 비롯한 산지 빙하가 3분의 1가량 녹아 내리면서 주변에 홍수가 빈번하다. 내가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만큼이나 사랑하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도 겨울에는 높아진 해수면 탓에 매년 물난리를 겪고 있다.
그래서 이맘때가 되면 물에 잠긴 베네치아의 사진들이 뉴스에 오르내린다. 이 사진들은 내가 동경하는 베네치아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다. 이런 기사를 접할수록 나는 환경 문제에 대해 절박하게 고민하게 된다.
21세기 화두는 단연 환경이다. 생태계 파괴와 지구 온난화의 문제는 이제 우리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될 만큼 절박하다. 벌써 20세기 동안에만 북극 지대의 대기 온도는 5도 가량 증가했고, 우리나라도 지난 100년간 기온이 1.5도 상승했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정부와 기업은 손을 맞잡고 환경으로 인해 발생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을 찾고 있다.
처음 내가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계기는 2006년 환경재단이 선정한 '올 한해 세상을 밝게 만든 인물'에 내가 선정된 것이었다. 이듬해 연말 환경재단 주체로 지구 온난화 방지 기금 마련을 위해 열린 '송송송(松松松)' 행사에서 소나무를 주제로 자선 패션쇼를 한 것이 환경에 대한 나의 첫 번째 활동이었다.
당시 행사에는 오래전부터 '소나무 지키기 국민연대'를 이끌어온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 열 환경재단 대표,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총장, 칼럼니스트 조용헌, 임옥상 화백이 '지구를 지키는 5형제'라는 재미있는 애칭을 가지고 패션쇼 무대에 동참해 주었다. 이밖에 배우 심은진씨, 탤런트 이서진씨, 아나운서 한성주씨도 동참해주었다.
이 행사를 통해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 소나무가 매년 줄고 있고, 2043년에는 소나무가 우리나라에서 자취를 감출 수 있음을 알게 됐다. 소나무를 사랑하는 나에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나도 조금씩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지금도 월요일에는 기후변화센터와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이 공동 주관하는 '기후변화 리더십 과정'을 들으며 환경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식을 넓히고 있다.
그런데 처음 환경을 패션에 적용하고자 나선 당시에는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소비지향적인 패션은 필연적으로 환경과는 반대편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가 바로 패스트 패션이다. 안타깝게도 최근 동향을 살펴보면 이 패스트 패션의 비중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영국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국인 한 명이 한 해 입고 버리는 옷의 무게가 자그마치 30㎏에 달한다고 한다. 비교적 검소한 생활을 하는 유럽 국가에서 나온 통계치가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는 이보다 훨씬 더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엄청난 양의 옷을 생산해 저렴하게 판매하는 패스트 패션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장점이 있겠지만 환경에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대다수의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환경문제는 덮어두고 싶은 민감한 사안이다. 하지만 최근 재활용이나 친환경 소재와 같은 에코패션에 대한 많은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염색도 환경오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친환경적인 디지털 프린트를 활용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애쓰고 있다.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온 국민이 동참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최근 정부나 환경단체 그리고 기업들도 동참하고 있는 '여름에 넥타이 안 매기 운동''겨울에 내복 입기 운동'은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지금 세대는 모르겠지만 기성세대들은 춥고 배고팠을 때 내복에 대한 향수를 저마다 가지고 있다.
또한 유럽 등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최근 붐이 일고 있는 '자전거 타고 출퇴근하기 운동'같은 경우는 온난화의 주범인 湯?매연을 직접적으로 경감시킬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이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가 절실히 요구된다.
지난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퀼트 전시에 다녀왔다. 거기서 규방 문화인 우리 조각보들을 보면서 전에는 이처럼 손바닥 크기도 안 되는 자투리 천들도 소중하게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적게 소비하는 게 미덕이라면 소비를 지금보다 더 신중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갑자기 환경재단의 건배제의 문구가 떠오른다. '가슴은 뜨겁게, 지구는 차갑게!' 우리의 노력으로 지구가 다시 평온해 지는 그날까지 함께하는 자리마다 여러분들도 다 같이 이 말을 외쳤으면 좋겠다. 가슴은 뜨겁게, 지구는 차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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