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을 사흘 앞둔 지난 9일 오후 경기 의왕시 고봉정보통신고등학교. 겉으로 보면 여느 학교들과 다를 바 없지만 현관부터 모든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서늘한 느낌의 지문인식기와 번호키까지 달려 방문객들은 멈칫할 수밖에 없다. 동행한 교사가 출입인증을 마치자 철문이 스르르 열렸다. 이 학교는 '소년원'이라 불리는 청소년 교화시설이다.
어두운 복도와 계단을 따라 도착한 2층 교실에선 짧게 깎은 머리에 체육복을 입은 아이들 4명이 수능 시험 준비에 몰두해 있었다. 여느 고3 수험생과 다르지 않게 코 앞에 닥친 시험을 걱정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기초가 부족해 수학과 영어 점수가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는 유민기(18ㆍ가명)군. 그는 부모가 이혼하면서 한 살 때부터 할머니 손에 자랐다. 열 일곱 살이 될 때까지 부모로부터 연락 한 번 없었다. 결국 2004년 5월 가출한 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친구들과 날치기 등 범죄를 저지르다 여기까지 왔다.
소년원에서 유군은 악대반에서 활동하며 처음 '바리톤'이란 악기를 배웠다."음악을 하고 싶다는 꿈이 제 마음 속 깊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대학의 실용음악과를 가야한대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참 제가 작곡한 노래인데 들어보실래요? 제목은 '어떡해' 예요. 너를 사랑한 건 내 잘못인가 봐. 내 가슴이 찢어지도록…"
유군은 올해 4월과 8월 고입,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틈틈이 노래 세 곡도 만들었다. 수능을 준비하며 힘들 때마다 훗날 음악을 하며 살고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견뎠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좌절과 방황으로 세월을 허송했던 신철수(19ㆍ가명)군은 법대에 진학해 인권 변호사가 되는 게 꿈이다. 그동안 자신이 오토바이 절도 등으로 피해를 입혔던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속죄하고 싶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해도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기특한' 생각이 마음 속에 자리잡은 듯 했다. "아직 실력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어요. 하지만 소년원에서 자격증도 따고 검정고시도 치르면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해 가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또래보다 1년 먼저 수능 시험을 보는 김윤철(17ㆍ가명)군은 사회복지과에 진학할 생각이다. 보호관찰관이 되기 위해서다. 특수절도 등으로 이곳에 온 자신을 잘 이끌어준 선생님들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시다. 김군은 "내가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소년원 아이들 마음을 잘 알고 더 잘 선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올해 수능 시험을 치는 소년원생은 전국에서 11명이다. 해마다 평균 15명 정도 수능 시험을 보고 있다. 이들은 특별히 마련된 고사장에서 시험을 친다. 직원이 동행하지만 시험장 안에 들어가지는 않는다.
수능을 보지 않고 수시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하는 인원을 포함하면 매년 50명 가량의 소년원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2009학년도에는 44명, 2008학년도엔 51명이 대학에 진학했다.
청소년 시절 자신처럼 비행에 빠지는 아이들이 없도록 경찰관이 되는 게 꿈이라는 이현민(18ㆍ가명)군은 이미 초당대 경찰행정학과 수시전형에 합격한 상태다. 이들은 자동차, 사진, 제과제빵, 건축인테리어 등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과들을 주로 선호한다.
아이들이 소년원에 입소해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가족들의 반응도 달라졌다. 신군은 얼마 전 아버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신군의 아버지는 편지에 '(네가) 소년원을 나오면 함께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생이 되어 만나자'고 썼다. 처음으로 받아보는 아버지 편지였다. 그 후 신군도 자신의 꿈을 지키려는 의지가 더 강해졌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은 여전하다. 아이들이 어렵게 치른 자신과의 싸움에 이어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이다. 신군은 "소년원에 있다고 해서 말투가 거칠고 행동도 폭력적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선희(18ㆍ가명)양은 "니 처지에 공부해봐야 잘 할 수 있겠느냐고 빈정대는 말들을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수능에서 좋은 성적 받아서 그동안 속만 썩였던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태무기자
이동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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