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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날아라 씨앗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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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날아라 씨앗들아

입력
2009.11.12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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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이 자손을 만들기 위해 취하는 전략은 흔히 두 가지로 구분된다. r-전략형과 k-전략형이다. r-전략형은 물고기나 풀과 같이 생존율 자체는 낮지만 무수한 후손을 낳아 성체가 될 확률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k-전략형은 사자나 나무와 같이 경쟁력이 있는 소수 정예 후손을 생산하여 생존율을 높이는 전략이다. 후손을 생산하는데 있어 k-전략형은 r-전략형에 비해 비교적 높은 비용을 치러야 한다.

식물을 두고 보면 r-전략형인 풀은 k-전략형인 나무에 비해 몸집이 작고 수명도 짧다. 그래서 풀이 만들어 내는 씨앗은 대부분 크기도 작을뿐더러 씨앗 속에 포장된 양분도 적다. 반면 나무들은 비교적 몸집도 크며 일정기간 성장하면서 비축한 물질량도 많아 크기가 크고 양분이 많은 씨앗을 만든다.

그러나 풀이든 나무든 어미의 역할은 씨앗까지가 끝이다. 어미의 몸을 떨어져 나가는 순간 씨앗들은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씨앗의 성장은 씨앗 자신과 숲이라는 사회의 몫으로 남는다.

모든 씨앗의 운명은 떠나감이다. 어미를 떠나 미지의 세계로 나가야 하는 씨앗의 여정이 다소 불안하지만, 일생 동안 움직이지 않고 고착생활을 하는 식물에게 이 기간은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순간이기도 하다. 타지에서 홀로 싹을 틔울 수 있을까 걱정도 되겠지만, 숲은 그 속의 생물들이 공동 출자한 공동의 발아터이자 보육원인 임상, 즉 숲 바닥층을 가지고 있어 부모의 덕이 아니라도 숲이라는 사회의 보살핌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

숲으로서는 이렇게 모여든 씨앗에 의해 일정 수준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 다양한 종의 유입은 그 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우점종(優占種)을 견제하기도 하고, 새로운 강자를 유치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숲이 다양한 종으로 채워진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구경할 나무의 종류가 많아지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숲에서 동일종들이 모여 있을 경우, 즉 대를 이어 어느 한 종으로 우점될 경우 기존의 병원성 미생물이나 섭식자들에게 공격받을 확률이 높아진다. 따라서 많은 나무들이 흩어져서 분포하게 되고, 이를 위해 종자를 멀리 이동시키는 것이 유리하다. 곤충의 입장에서는 흩어진 먹이를 찾기 위해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고 이러는 과정에 또한 적의 공격에 노출되기 쉽다.

후손을 만드는 전략에서 사람은 극단적인 k-전략형이다. 인간의 성장은 오랜 기간 부모와 사회의 강도 높은 양육으로 이루어진다. 그 중심에 교육이 있다. 교육이라는 양육제도는 어린 개인을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평가하는 시험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인간사회의 불편한 규칙이다. 나무와 풀이 씨앗에게 남겨주는 유산의 양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부모 개인이 후손에게 남겨주는 재산은 서로 다르지만, 숲 바닥이 씨앗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 것처럼 사회는 궁극적으로 모든 개인이 스스로의 힘으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의 미래 세대들이 대입 수능이라는 힘든 시험을 치른다. 수능 시험 문제는 외고생이나 특목고생이나 일반고생이나 검정고시생에게나 똑같은 것이 주어진다. 그러나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회는 미래 세대들을 위해 진정

어린 배려를 했는지 걱정이다. 부디 오랜 시간 고생한 우리의 미래들, 스스로의 삶을 찾아 날아오르는 씨앗들처럼 새로운 시작을 위해 힘껏 날아올라라. 그 안에 사랑하는 내 딸도 있다.

차윤정 생태전문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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