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적으로 눈이 떠졌다. 옆에서 자는 아이가 아뿔싸, 불덩이였다. 시계를 보니 새벽 5시.
잠이 확 달아나며 머릿속에서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신종플루 아닐까, 그냥 감기일 거야, 깨워 해열제를 먹여야 하나, 응급실에 가야 하나, 일단 푹 자게 둘까….
그 순간 선택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체온은 39도.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아이가 자연스럽게 깨도록 부스럭거렸다.
1시간쯤 뒤 집에 있던 해열제를 먹이고 오전 8시 가까운 의원을 찾았다. 의사는 "목이 붓긴 했는데 감기인지, 신종플루인지는 몰라요"라며 일반 감기약을 처방했다.
출근하는 동안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목이 부었단 말은 인후통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긴데 고열과 인후통은 신종플루 의심 증상 아닌가.
21개월 짜리가 당연히 목이 아프다는 표현을 못하는데. 의원을 믿어야 하나, 거점병원엘 가야 하나. 퇴근 길에 결정했다. 거점병원에 가 보기로 말이다.
거점병원 의사는 타미플루를 처방했다. 그리곤 "지금으로선 신종플루 같진 않지만 원하시면 신속 검사나 확진 검사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시 선택은 엄마 몫으로 돌아왔고, 또 온갖 생각이 교차했다.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검출하는 신속 검사는 하루 안에 결과를 알 수 있지만 예민도가 50%로 낮다.
신종플루와 일반 감기 바이러스의 단백질을 잘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길게는 3일까지 걸린다는 확진 검사는 신종플루 바이러스 특유의 유전자(RNA)를 찾아낸다.
"확진 검사 해 주세요." 집에 돌아와 타미플루와 함께 처방된 감기약을 아이에게 먹였다. 다음날 새벽 아이는 또 열이 났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함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거점병원에 다녀온 다음날 저녁 6시께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떴다. 음성이었다. 타미플루 복용은 중단했고, 아이는 한 번 더 열이 난 뒤 점점 회복했다. '비상 상황' 종료 뒤 차분히 생각해 보니 신종플루에 대처하기 위해 엄마들이 너무 많은 선택의 상황에 내몰린다는 걸 실감했다.
기자보단 엄마의 마음으로 일련의 선택을 체험한 뒤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된 건 대응 속도다. 아이의 검사 결과가 나온 날 3세 남자 아이가 신종플루로 숨졌다.
열이 나 동네 소아과에 갔는데 단순 감기 진단을 받았고, 뒤늦게 대학 병원 응급실을 찾은 점이 우리 아이의 경우와 비슷했다.
일각에선 타미플루의 부작용을 우려해 투약을 꺼린다는 얘기가 들린다. 김우주 고려대 의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인터넷 같은 부정확한 자료를 통해 타미플루의 부작용이 침소봉대된 경향이 있다"며 "신종플루가 의심되면 확진 검사 전이라도 빨리 투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속 검사의 예민도 향상도 시급하다. 의료 현장에선 빠른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금은 신종플루와 일반 감기 바이러스가 공존하는 시기. 증상만으론 의사도 구별하기 쉽지 않다. 신속검사 진단 키트 '업그레이드' 기술은 백신 개발보다 쉽다.
임소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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