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형수술의 중국인 잠재 고객은 14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정작 환자는 많지 않다. 비자 발급 등 입국 절차가 까다로워 거대 시장 중국에서 유입되는 환자가 적기 때문. 전문가들은 성형 메카인 서울 강남구와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제주를 연결, '강남구_제주 벨트'를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의료 선진국 한국에 10년 간의 기회가 주어졌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내 고급 의료 서비스 수요층인 금융자산 100만달러 이상 보유자는 40만명을 넘었다. 그러나 이들의 진료를 담당할 중국 내 고급 의료 기관은 태부족이다. 고급 의료를 대표하는 외국계 병원의 중국 진출도 부진하다. 2005년 말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은 외국계 의료 기관 수는 101개였지만 각종 규제와 시장 불확실성 때문에 투자를 포기, 1년 후인 2006년 말까지 영업을 계속한 기관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8개에 불과했다. 이런 이유로 연구원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기까지 최소한 10년은 걸린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부자 중국인들의 외국 병원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성형수술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중국 여성 대부분은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연구원도 중국 고소득층 여성을 대상으로 한 미용성형 분야의 전망을 매우 밝을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보건복지가족부가 2006년 중국 내 외국계 병원을 찾은 '경제적으로 풍족한' 중국인 1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1%가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고 싶다고 답했다. 중국 부유층 40만명 중 여성 20만명, 그 중의 71%인 14만여명이 한국 성형수술의 잠재 고객인 셈이다.
국내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다. 올 3분기 기준으로 성형외과 간판을 단 의원은 강남구에만 251곳. 제주의 전체 의원(298개) 수에 육박하는 의료 기관이 모조리 성형외과인 셈이다. 이런 까닭에 강남구는 국제적으로도 성형의 메카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에서 성형수술을 받는 중국인 환자는 많지 않다. A성형외과 원장은 "성형수수술을 받는 외국인 환자 중 중국인은 10% 정도에 불과하다"며 "비자 받기가 쉽지 않아 다른 나라로 가거나 성형수술을 포기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이 원장은 "중국 여성들에게 강남구 압구정동에서의 성형수술은 동경의 대상"이라며 "중국 여성들이 불편함 없이 한국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다면 전체 외국인 환자 수도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잠재 고객 유치를 위해 '강남구_제주 벨트'를 제안했다. 성형수술로 중국인들에게도 인지도가 높은 강남구 병원에서 중국 현지를 인터넷으로 연결, 화상 상담을 한 뒤 중국인들도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는 제주에서 수술하자는 것. 다만 의사들이 제주에 가서 수술하기 위해서는 소속 의료 기관 외 기관에서 진료할 수 없도록 규정한 현행 의료법의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우봉식 전국글로벌의료관광협회 이사장은 "의료법은 외국인 진료에 대해서만 예외 조항을 두는 것으로 개정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드라마와 영화로 시작한 한류 열풍을 외국인 환자 유치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발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스타병원' 집중 육성… 해외 인지도 높여야
2000년대 초반 몸의 일부가 붙어 태어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잇따라 성공시키며 일약 유명세를 탄 싱가포르의 래플즈병원, 암 치료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의 엠디앤더슨. 각각 매년 30만, 90만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각 분야의 세계적 스타 병원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외국인이 머릿속에 떠올릴 만한 스타 병원이 단 한 곳도 없다.
내놓을 만한 스타 병원이 없다 보니 한국 의료 서비스에 대한 인지도도 낮을 수밖에 없다. 한 대학 병원 관계자는 "외국에서 한국 의료 서비스의 인지도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며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알리기 무색할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달 치료를 위해 한국의 한 대학 병원에 입원한 러시아인 알렉산드르(29)씨는 기억나는 한국 병원을 묻자 "삼성"이라고 답했다. 이마저도 휴대폰 등 전자 제품에서 삼성이 유명해 쉽게 기억한 것일 뿐 삼성서울병원이 어떤 치료로 유명한지는 알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의료 서비스를 외국인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스타 병원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상준 아름다운나라 성형외과ㆍ피부과 원장은 "스타 병원을 키우는 일은 국내ㆍ외 양면으로 중요하다"고 말했다. 스타 병원을 통해 대외적으로 한국 의료를 알리고, 스타 병원의 성공 모델을 국내 다른 병원들에게 제시해 또 다른 스타 병원으로 발돋움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이 원장의 설명이다.
육성 방법에 대해서는 해외 국제 의료관광 전시회 참여 지원, 각국 신문 방송 잡지 등 매체 홍보 지원 등을 꼽았다.
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 전문가들 "정부 시장분석·상품개발 더 뛰어라"
"공무원들이 한가하게 외국 출장 다니면서 홍보나 할 때인가. 냉철한 시장 분석을 통해 경쟁력 있는 상품을 제시하는 게 훨씬 낫다(A병원 관계자)." "정부는 외국인 환자 유치를 합법화한 것 외에 관련 사업 활성화를 위해 사실상 한 게 별로 없다(B병원 관계자)."
외국인 유치 사업에 뛰어든 병원들은 제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만이 무척 높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는 올해 5억5,000만원을 들여 뒤늦게 시장 조사에 나섰지만 연말이 가까운 현재까지 이렇다 할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싱가포르 태국 일본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치료 비용, 집중 육성 치료 분야 등 분석 자료 발간과 국가별 공략 상품 개발은 정부가 해야 할 몫이라고 지적했다. 강흥림 청심국제병원 국제홍보팀장은 "외국의 환자 유치 업체들이 '왜 한국에 가야 하는지, 무엇이 특화한 진료분야인지 알려 달라'고 하면 도무지 할 말이 없다"며 "이런 자료는 개별 병원이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싱가포르 메디신과 같은 기구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바람이다. 이 기구는 병원들이 일선에서 겪는 고충을 정부에 건의하고, 외국 환자 유치 관련 정부 정책을 발 빠르게 병원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경제개발청(신규 투자 활성화), 관광청(해외 마케팅), 국제기업 싱가포르(병원 성장 촉진) 등 정부 기관의 업무 분장도 최적화해 있다는 평가다.
권대익 기자
■ 코디 국가 자격증 도입… 의료마케팅 업그레이드
외국인 환자의 치료 계획을 수립하고, 안내하는 코디네이터에 대한 국가 공인 자격증이 없어 함량 미달 전문가들이 양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인력이 매년 얼마나 배출되고 있는지, 향후 얼마나 필요한지 등 과부족 현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2007년부터 주도해 온 코디네이터 양성 교육도 문제가 많다. 코디네이터의 마케팅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자 2008년 마케팅전문가과정을 만들었고, 외국어 능력이 떨어진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올해 러시아 몽골 아랍 등 외국어 전공자를 대상으로 의료 용어를 가르치는 의료관광교육과정을 또 만들었다. 뒷북 행정의 전형이다.
우수 인력 양성은 의료 분쟁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엄태원 경희대병원 계장은 "코디네이터는 환자와 가장 긴밀하게 접촉하기 때문에 전문 지식과 친절한 태도는 기본"이라며 "이들의 능력이 우수해야 환자 불만 발생과 의료 분쟁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대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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