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도, 인지도도 필요 없다. 녹화현장의 방청객들에게도 호응을 얻지 못하면 시청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날로 코너를 내린다. 폐지되고 싶지 않으려면, 웃겨라. 그러면 된다.'
MBC TV 개그 버라이어티 '하땅사'(하늘도 웃고 땅도 웃고 사람도 웃는다)의 처절한 서바이벌 법칙이다. 가장 재미없다는 판정을 받으면 '폐지 코너'로 선정돼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퇴출당한다. 경쟁심을 부추겨 더 좋은 코너를 만들겠다는 제작진의 의도다. 그렇다고 채찍만 있느냐. 최고 점수의 MVP팀에게는 100만원의 아이디어 개발비라는 당근도 주어진다. 하지만 이 팀 역시,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몰라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10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MBC드림센터 2층 하땅사 녹화현장. 스튜디오와 대기실, 복도
할 것 없이 녹화를 앞둔 개그맨들의 연기연습으로 후끈 달아 올라 있었다. "머리가 그게 뭐야. 다시 해." "무대 중앙으로 더 들어와." "거기서는 액션을 좀 더 줘야지." "플라스틱 쓰레기통으로 바꿔. 고무통은 너무 무겁잖아." 연출을 맡은 김구산 PD는 리허설에서 개그맨들의 동선에서부터 복장, 추임새, 말투, 소품까지 쉴새없이 지적을 쏟아냈다. 김 PD는 "폐지코너 때문에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고 말했다. 매주 한 코너가 폐지되면 새 코너를 올려야 하는데, 그것 또한 만만치 않다고. "각 팀마다 5~6개의 아이디어를 늘 준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대에 올리기 위해선 다듬어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폐지되지 않으려는 현 출연진, 한 코너가 폐지돼야 준비 중인 새 코너로 그 빈 자리를 꿰찰 수 있는 동료들. 무대 위뿐만 아니라 무대 아래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도 갈수록 심해질 수밖에 없다. 지난주 폐지된 '으악' 코너의 김경욱은 "매주 수능을 보는 수험생의 마음"이라며 "부모님이 '괜찮느냐'고 물어볼 정도로 더 힘들어 한다"고 말했다. 분루를 삼킨 '으악' 팀은 이번 주 '쁘띠쁘띠 마요네즈'라는 새 코너로 재기를 노린다. '설이별이' 코너의 문규박은 "MVP를 2번 차지했지만 한 주만 재미없어도 폐지되기 때문에 긴장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오후 7시 30분. 녹화에 들어가자 긴장감은 한층 높아졌다. 박준형이 이끄는 '박힌 돌'의 M패밀리(팀)와 정찬우의 '굴러온 돌' C패밀리의 대결이 펼쳐졌다. 4라운드에서 8개 코너가 맞붙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방청객은 물론 현장 제작진의 투표가 더해져 승패가 갈렸다. 개그맨들에게는 가장 '살 떨리는' 순간이다. 국내 최초의 UCC개그 '나, 이런 사람이야'의 오지헌은 "영하 2도의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가 찍었다.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며 표심에 호소했다. 2주 연속 폐지코너 후보에 올랐던 '끽과 뿍'의 오정태는 "더 할 수 있게 도와달라"며 읍소했다. 패한 패밀리의 주장은 상대편으로부터 물세례를 당한다.
M패밀리 주장 박준형은 폐지코너에 대해 "무시무시한 시스템"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저조차도 우리 코너가 살아있는 게 행복한데 다른 친구들이 받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은 말로 다 못하죠."
폐지코너가 생사의 갈림길이라면, MVP 개그맨들은 상금 100만원을 어디에 쓸지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상품권을 받는데 출연진이 정확하게 나눠 가진다. 책도 사고 영화도 보고 게임머니 등 문화생활비로 대부분 쓴다고 했다. 한 출연자는 "별다른 수입이 없는 신인 개그맨들에게 나눠주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그들에게는 상품권이 생활비인 셈이다.
자정께 끝난 이날 녹화에서도 폐지코너와 MVP가 정해졌다.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 녹화현장은 탄식과 환호가 한데 뒤섞였다. 결과는 이번 주 일요일(15일) 오후 4시 20분 방송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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