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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에 한복 350여점 기증한 디자이너 이리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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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에 한복 350여점 기증한 디자이너 이리자씨

입력
2009.11.12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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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만난 한복디자이너 이리자(74)씨는 뜻밖에 화사한 양장 차림이었다. 왜 한복을 입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평소에는 잘 안 입어요. 내가 한복을 입으면 너무 화려하고 튀어보여서 주위 사람들한테 실례가 되거든요"라며 웃었다.

그는 삯바느질 수준이던 한복에 패션 개념을 도입한 1세대 한복디자이너다. 학창시절 교복을 직접 만들어 입고 다닐 만큼 손재주가 좋았던 그는 생계를 위해 1965년 한복점을 연 이래 지금까지 40년이 훨씬 넘도록 한복의 유행을 주도해왔다.

이씨는 최근 350여점의 한복을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했다. 그 중 100여점이 '선과 색의 어울림'(30일까지)이라는 제목으로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진 한복의 형태와 옷감, 장식기법 등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동시에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한 이씨의 실험정신도 느낄 수 있는 자리다.

전시장 초입에 걸린 1971년 '범국민복장콘테스트' 대상 수상작, 1974년 미스코리아 진 김은정이 미스유니버스 대회에 입고 나가 민속의상상을 수상했던 색동 한복은 오늘의 이씨를 있게 한 각별한 옷이다. 이씨는 "당시 미스코리아는 외국 대표에 비해 키가 작았기 때문에 화려한 사선 무늬를 넣어 키를 커보이게 하고, 진동선을 없애 넓은 어깨도 보완했다"고 말했다.

1975년 국내 최초로 한복 패션쇼를 연 이후 전 세계를 돌며 한복을 선보인 그는 한복의 세계화에 공로가 크다. 일자 형태에 허리에 주름을 잡은 항아리형 한복이 주를 이루던 시절, 밑단이 넓게 퍼지는 A라인 형태의 디자인과 서양식 패티코트를 도입해 한복을 연회용으로 변신시켰다. 역대 영부인과 미스코리아, 배우, 예술가 등이 한국을 대표하는 자리에서 그의 한복을 입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1970년대 후반에는 김기창 장우성 홍석창 등 화가들의 그림과 안광석 등의 서예 작품을 한복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전시장에서는 영부인들의 한복도 볼 수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평소 좋아해 수의로까지 입힌 보랏빛 한복을 비롯해, 이순자 이희호 권양숙 여사가 대통령 취임식과 외국 순방 때 입었던 한복들이 나란히 걸렸다. 영부인들의 체형이나 피부색, 방문국의 특징에 따라 디자인을 달리했다는 이씨는 "이순자 여사는 화려한 취향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한복의 아름다움을 가장 널리 알린 분이고, 이희호 여사는 무궁화 자수와 약간 짧은 길이의 활동적인 한복을 좋아했으며, 권양숙 여사는 어떤 한복도 잘 소화하는 체형을 지녔다"고 회상했다. 이밖에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씨가 세계 무대에서 입었던 싸리꽃 무늬의 미색 공단 한복, 성악가 윤인숙씨가 북한에서 노래할 때 입었던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 등도 눈길을 끈다.

전시장 말미에는 조각천을 이어 만든 이씨의 최근 작품이 소개되고 있다. 그는 2000년 위암 진단을 받은 후에는 그간 모아뒀던 짜투리 천을 손바느질로 이어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씨는 "이걸 하면서 죽는다는 생각을 잊어버릴 수 있었고, 그래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내 생명을 이어준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도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한복을 만든다고 한다. "저는 안방귀신이에요. 일을 해서 손톱이 하나도 안 남아. 그래도 그렇게 재미있어요. 들어앉아서 바느질하는 게."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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