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은 풍부한데, 마땅한 필자가 없다." 풍부한 자본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갖춘 일부 대형 출판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내 출판사들의 고민거리다. 쓰기만 하면 몇만부가 팔리는 일급 필자는 언감생심, 5,000~1만부 정도를 꾸준히 팔 수 있는 작가군의 확보가 이들의 과제다. 전문성과 필력, 취재력을 갖춘 '재야의 고수'는 과연 어디에 숨어있을까? 2003~2004년께부터 누구에게나 친숙해진 블로그가 그 시름을 크게 덜어줬다. 블로그 콘텐츠를 책으로 출간한 '블룩'(blookㆍblog와 book의 합성어)이 베스트셀러의 2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처럼, 국내 출판계도 인기 블로거들을 필자로 활용함으로써 '블룩의 시대'를 열었다.
온라인의 대중성ㆍ개방성ㆍ정보공유성에 기반한 '블룩의 시대'는 대중이 더 이상 '책'으로 상징되는 지식의 소극적 수용자가 아니라, 그 적극적 생산자이자 유통자가 됐다는 문화사적 의미를 지닌다.
스타 블로거들, 출판계 스타로
인기 블로그의 콘텐츠를 책으로 출판하는 시도는 요리ㆍ육아ㆍ화장ㆍ여행 등 실용ㆍ취미 분야에서 시작됐다. 주부 김은주(33)씨가 2004년부터 싸이월드에서 운영하던 인기 육아블로그의 내용을 책으로 묶은 <예성맘의 우리아이 10년 밥상> (2006), <예성맘의 우리아이 평생밥상> (2008)은 6만부 이상 판매됐다. 평범한 주부였던 김씨는 TV 광고에도 출연했고 3~4권의 새 책 출간이 예약된 '귀하신 필자'가 됐다. 예성맘의> 예성맘의>
취미ㆍ실용 분야 스타 블로거들의 성공 이후 다양한 분야의 블로거들이 스타 필자로 각광받게 됐다. 젊은 미술인들에 주목하며 미술계의 숨은 이야기를 전하는 '문화의 제국'이라는 블로그로 온라인 스타가 된 김홍기(37)씨의 블룩 <샤넬, 미술관에 가다> (2008), <하하 미술관> (2009)도 각각 1만부 이상 팔렸다. 인터넷 논객으로 불리는 한윤형(26)씨는 정치ㆍ사회 분야의 스타 블로거. 그의 <키보드워리어 전투일지> (2009)는 6개월 만에 2쇄를 찍었다. 지성사의 흐름을 짚고 인문학 신간을 소개하는 인기블로그 '로쟈의 저공비행'의 운영자 이현우(41)씨의 <로쟈의 인문학 서재> (2009)도 그 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책이다. 고양이, 편의점, 팝업북, 골목, 장난감 등 소소한 소재에 대한 전문 블로거들을 주목한 출판사 갤리온의 '작은 탐닉' 시리즈는 모두 20권으로 출간돼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로쟈의> 키보드워리어> 하하> 샤넬,>
출판사로 들어온 원고를 보고 필자를 구하는 고답적인 방식에서 신문이나 잡지 등으로 알려진 필자 찾기, 인맥 동원하기 등 기존 방식과 달리 블로그는 이처럼 묻혀있던 저자군을 발굴하는 수원지로 자리매김했다. 배영진(40) 갤리온 주간은 "'작은 탐닉' 시리즈의 경우 1~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연히 찾아낸 필자들"이라며 "블로그는 가장 손쉽게 예비 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자 저자와 출판사를 연결해주는 새로운 채널"이라고 말했다. <하하 미술관> 을 기획한 미래인 출판사의 황인석(39) 편집장은 "블로거들은 정보가 공개돼 있으며 이메일 연락도 수월해 섭외도 용이하다. 중소 규모 출판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하하>
기획ㆍ편집 중요성 더 높아져
블로그가 출판의 새로운 콘텐츠 공급원으로 각광받는 이유는 콘텐츠 내용이 소비자ㆍ독자 친화적이기 때문. 주로 취미ㆍ실용 분야의 블로거들이 초기부터 성공한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하루 수백~수천명에 이르는 블로그 방문자 수에서 시장성도 어느 정도 검증되는 점, 블로거들이 대부분 사진 판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작단가도 낮출 수 있다는 점, 기존 필자에 비해 선인세 등 초기 자금을 적게 투입해도 된다는 점도 블룩의 매력이다.
그러나 블로그의 인기나 블로거의 스타성이 곧장 출판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온라인과 활자라는 매체의 형식이 다르기 때문에 블로그의 콘텐츠를 가공하는 정교한 편집ㆍ기획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로쟈의 인문학 서재> 를 기획한 산책자 김수한(39) 주간은 "책은 전체 블로그 내용의 5%도 소화하지 못했다"며 "어떤 식으로 텍스트를 재배치할 것인가, 사진 숫자는 얼마나 줄일 것인가, 문체는 어떤 식으로 바꿀 것인가 등 컨셉을 가다듬는 데 1년 가량 걸렸다"고 말했다. 로쟈의>
블로거 네트워크가 책 구매로 연결되는가에 대해서도 회의적 시각이 있다. 황인석 미래인 편집장은 "온라인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노는 데 길들여진 블로그 방문자들을 전통적인 활자매체로 유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콘텐츠의 내용보다는 방문자 수에 집착하거나, 기존 지식과 정보의 짜깁기에 불과한 블로그가 태반인 만큼 이를 선별하는 출판기획자들의 섬세한 시각과 치밀한 기획, 마케팅 전략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백원?한국출판연구소 연구부장은 "1인 미디어 시대를 대변하는 블로그는 콘텐츠의 전시장이자 재야의 고수를 발굴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라며 "그러나 아직까지는 블룩이 주로 실용서 범주에 머무르고 있으며 비실용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느냐가 향후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 YES24·그린비 등 "블로거들 노세요"
숨어 있는 필자를 캐러 여기저기 블로그 사이트를 뒤지는 대신, 출판 관련 업체가 블로그를 차려 놓고 필력 있는 네티즌들이 꾀기를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파워 블로거들에게 '들어와 놀라'며 편집실 한 켠을 내주는 셈.
인터넷서점 예스24는 문학동네 출판사와 함께 매년 여름 'YES24 블로그 축제'를 진행한다. YES24 블로그에 포스팅된 글 가운데 책, 영화, 음악 등 세 분야에서 좋은 리뷰를 뽑는데, 각 분야의 대상과 우수상 수상작들을 묶어서 책으로 발간한다. 인세(상금)도 지급된다. 품 들이지 않고 자신의 이름이 '필자'로 새겨진 책을 낼 수 있어 네티즌의 호응이 높다.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인 그린비도 자사 홈페이지에 개설된 블로그의 글들을 모아 라는 잡지를 낸다. 출판사 특성상 포스팅되는 글과 댓글의 수준이 인문 콘텐츠로 손색이 없다. 별 비용을 들이지 않고 잠재 필진을 관리하면서 인문서 시장에서의 브랜드 파워를 높일 수도 있어 출판사 입장에서는 일석이조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 한국출판문화상 역대 수상자 인터뷰/ '헌법의 풍경'으로 제45회 저술상 받은 김두식 교수
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생각은 참으로 복잡하다. 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그 현실적 적용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법의 본질, 특히 법 중의 법인 헌법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2005년 제45회 한국출판문화상 교양부문 저술상 수상작인 <헌법의 풍경> 은 헌법의 정신과 그 의미를 짚어보고 헌법이 보장하는 인권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는 책이다. 저자 김두식(42) 경북대 법학부 교수는 "법은 권력이 시민을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민이 권력을 통제하는 도구인데도 사람들은 법을 법률가의 전유물로 인식하고 법에서 일종의 공포를 느낀다"며 "법에 대한 그런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올해 1월부터 미국 캔자스대학에 방문교수로 머물고 있는 그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헌법의>
<헌법의 정신> 은 사법시험에 합격, 군법무관과 검사를 지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법 운용의 문제점과 법률가의 일그러진 초상을 고발한 책으로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이 나온 2004년은 헌법재판소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정치적, 사회적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터라 책에 대한 관심도 더 뜨거웠다. 헌법의>
독자들은 출간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책을 꾸준히 찾고 있는데 김두식 교수는 그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헌법의 기본권이 보장될 것이고 그러면 이 책이 팔릴 일도 없을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도 아직 꾸준히 판매되는 것을 보면 여전히 갈 길이 먼 것 같다." 그는 "우리 헌법의 기본 정신을 요약하면 다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헌법은 사회적 가치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만 담고 있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하는 것 이상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행정수도 이전, 미디어법 등에 대한 최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잇달아 논란을 빚는 것과 관련해 그는 "헌법재판소가 사법 엘리트 중심으로 구성돼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개별 결정이 나올 때마다 '헌재 폐지론'을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여성, 히스패닉, 흑인 등으로 구성원을 다양화하는 미국 연방대법원처럼 우리도 헌재 재판관 구성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와 일반 시민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로스쿨 제도가 시작된 만큼 시민과 호흡할 수 있는 법률가가 지속적으로 배출될 수 있도록 감시와 격려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의 풍경> 에 이어 올해 5월에는 우리 법조계의 어두운 현실을 실증적으로 신랄하게 고발하고 비판한 책 <불멸의 신성가족> 을 출간해 다시 화제를 모은 김 교수는 12월 중 또다른 새 저서를 출간할 예정이라고 알려왔다. 불멸의> 헌법의>
박광희 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