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세정개혁 방안의 하나로 지난달 말부터 시행한 '납세자 권리보호 요청제'에 따라 납세자의 권리침해가 구제된 첫 사례가 나왔다고 한다. 외부에서 영입된 납세자 보호관(국장급)이 세무조사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얘기를 듣고 독립적으로 세무조사 중지명령을 내린 것이다. 세무서의 권한 남용이나 조사반의 금품 수수 등 전통적 세정비리에 관련된 사례는 아니라고 해도, 세정의 투명성과 신뢰를 내세운 백용호 청장의 의지를 보여준 첫 작품으로 꼽기에 부족하지 않다.
사안은 간단하다. 개인사업자 A씨는 지난해 관할 세무서로부터 세무조사를 받아 부가세 종합소득세 등 수백만원의 세금을 추징 당했는데 올해 또다시 세무조사를 받게 되자 해당 세무서의 납세자 보호담당관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올 7월 개방직으로 채용된 변호사 출신의 이지수 납세자 보호관은 사안을 검토한 끝에 "비정기 세무조사 대상자로 선정될 정도로 명백한 탈루혐의 자료가 없다"며 세무조사 중지를 명령했다.
이 과정에서 이 보호관은 국세청 조사국장은 물론 백용호 청장과도 사전에 협의나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무조사 중지권은 단독으로 발동할 수 있다는 규정도 있지만, 첫 권한행사인 만큼 판단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립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에겐 시정요구 명령권, 징계 요구권도 있으나 이번 경우는 세무서나 담당자의 책임을 물을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제한적 결정의 배경도 밝혔다.
하지만 이번 사안은 성격이나 경중을 볼 때 작은 시작일 뿐이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납세자의 권익을 중시하는 세정 공무원들의 인식이 뿌리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폐쇄적 조직문화와 고압적인 행태를 일삼아온 국세청의 체질에 비춰 섣불리 납세자 권리보호를 요청했다가 나중에 유형ㆍ무형으로 보복 당하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국세청이 진정 납세자 편의를 우선하는 공복으로 자리잡으려면 납세자 보호관의 역할을 홍보하기에 앞서 세정의 주인은 납세자라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백용호 실험의 성패는 그것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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