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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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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시로 여는 아침]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입력
2009.11.10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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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하회 마을을 방문하러 강둑을 건너고

강진의 초당에서는 고운 물살 안주 삼아 한잔 한다는

친구의 편지에 몇 해 동안 입맛만 다시다가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향기 진한 이탈리아 들꽃을 눈에서 지우고

해 뜨고 해 지는 광활한 고원의 비밀도 지우고

돌침대에서 일어나 길 떠나는 작은 성인의 발.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피붙이 같은 새들과 이승의 인연을 오래 나누고

성도 이름도 포기해버린 야산을 다독거린 후

신들린 듯 엇싸엇싸 몸의 모든 문을 열어버린다.

머리 위로는 여러 개의 하늘이 모여 손을 잡는다.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

보이지 않는 나라의 숨, 들리지 않는 목소리의 말,

먼 곳 어렵게 헤치고 온 아늑한 시간 속을 가면서.

*로마서 8:24

● 할 수 없는 것과 하지 않는 건 우리가 낮에 보는 세상과 꿈속에서 보는 세상만큼이나 다르죠. 그 사이 어딘가에 희망 같은 게 있겠죠. 희망이란 우리의 의지로 꾸는 꿈 같은 것이겠죠. 돼지꿈을 꾸겠다고 생각하며 잠들던 어린시절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돼지꿈을 꿨던가요? 그런 식으로 돼지꿈을 꾼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복권을 살 수도 없었죠.

나름 겪어봤으니 저는 희망이란 번번이 실패한다는 걸 알면서 계속 시도하는 일이라고 말하겠어요. 다시, 할 수 없다고 해서 해볼 수도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 볼 수 없는 걸 보는 유일한 방법은 보일 때까지 보는 일. 결국 희망이란 수천 번의 절망을 각오하겠다는 말이겠네요. 그 때가 되면 혹시 그런 게 보일까요? 여러 개의 하늘이 모여 손을 잡는 풍경 같은 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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