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압력에 반발하며 1년6개월 간 버티던 이정환 전 이사장의 퇴임으로 공석이 된 한국거래소의 신임 이사장 선출 작업이 지난주부터 시작됐다.
후보 추천위원회가 구성되고, 모집 공고가 나붙는 등 관련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인사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지만 현재 구도에서는 자본시장을 잘 아는 민간인 출신이 유력하며, 실제로 그런 조건에 부합한 몇몇 인사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다.
거래소의 변신을 기대하는 증권업계에서는 민간인 출신 신임 이사장이 주도할 개혁 작업의 내용과 수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 그가 추진할 개혁 작업에는 공공기관 체제에서 벗어나 예전처럼 민간기관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중장기적으로는 거래소의 증시 상장까지 포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개혁의 핵심인 거래소 상장은 성공할 것인가. 대부분 증권관계자는 "상장은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패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쓰라린 경험 때문이다.
이정환 전 이사장의 전임자인 이영탁(현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전 이사장 재임 시절에도 상장이 강력히 추진됐으나 금융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장관급 관료 출신으로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해 정치적 지분까지 갖고 있던 그가 재정경제부의 반대 논리를 뚫지 못한 것은 ▦상장차익 배분 ▦기업감리 등 기득권 때문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거래소 재무제표(2008년 말 현재)에 따르면 상장이 이뤄지면 기존 주주는 로또 당첨 수준의 대박을 얻게 된다. 납입 자본금은 1,000억원이지만 자산(1조8,104억원)에서 부채(3,009억원)를 뺀 실제 자본가치는 14배인 1조4,095억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거래소가 지분의 3.78%를 자기주식으로 갖고 있다는 것. 상장 차익 전액을 700명 직원에게 나눠줄 경우 1인당 연봉에 육박하는 금액이 돌아가게 되는 셈이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거래소가 제시한 상장차익 배분 방안에 재경부가 반대했고, 이견이 좁혀지지 못하면서 정권 실세가 추진했던 상장 작업도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주주 입김에 좌우되는 상장기업이 된 뒤에도 거래소가 다른 상장 기업에 대한 감리ㆍ심사권을 쥐는 것에 대해서도 금융당국이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되새긴다면 신임 이사장이 선택할 대안은 좁아 보인다. 금융당국의 영향력이 여전히 절대적인 상황에서, 거래소를 민간기업으로 만들고 상장까지 추진하겠다면 권한과 지분의 상당 부분을 포기해야 한다. 물론 거래소 직원들이 '상장을 위한 대가로는 지나치다'고 반대한다면 그의 행보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이해관계의 대립 상황 아래서 신임 이사장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당분간 거래소는 공적 역할이 강조되는 기존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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