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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점점 길어지는 상영시간 덜어내는 용기 필요

입력
2009.11.10 0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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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영화 '1900년'(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은 스트레칭까진 아니더라도 크게 심호흡 한번쯤은 하고 봐야 한다. 상영시간이 4시간 5분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한날 태어난 귀족과 소작농의 몸을 빌어 이탈리아의 현대사를 관통한다. 파시즘으로 얼룩진 이탈리아 역사의 어둠을 감안하면 4시간 5분이란 물리적 존재 형태가 오히려 짧아 보인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베니치오 델 토로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체'(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4시간 28분간 스크린에 명멸한다. 20세기 세계사를 바꾼 체 게바라의 뜨거운 삶을 그린 영화이니 너무나 당연한 상영시간으로 다가온다. 관객들도 큰 뒤척임 없이 철인의 열정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혹 관객들이 '이코노미클래스 증후군'이라도 일으킬까 봐 우려한 것일까. 영화 상영에선 드물게 '인터미션'을 두었다.

그래도 '1900년'과 '체'는 애교수준이다. 필리핀 예술영화 감독 라브 디아즈가 지난해 만든 '멜랑콜리아'는 상영시간이 8시간이다. 2007년작 '인칸토스 땅의 죽음'은 무려 9시간 동안 영사기를 혹사시킨다. 가히 고독한 작가주의의 동참 정신이 필요한, 상업영화라면 꿈도 꾸지 못할 길이이다.

영화는 종종 길이로 그 정체성을 드러낸다. 역사를 정치하게 담아내는 영화일수록 관객과의 소통시간은 길어진다. 관객의 몸 상태를 감안하지 않고 자신의 할말만 다하고자 하는 작가주의 영화도 종종 두툼한 시간의 부피로 그 묵직한 존재감을 나타낸다.

하지만 영화계는 1시간 30분 가량을 가장 이상적인 상영시간으로 친다. 그 정도면 관객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으면서 영화를 최적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상업영화가 '경량급'의 상영시간을 지향하는 이유이다.

한국영화가 요즘 길어지고 있다. '예술' '독립'을 기치로 내건 작품들은 논외로 쳐도 상업영화의 대표 장르인 코미디나 멜로까지 2시간에 육박하고 있다. 11일 개봉하는 '청담보살'은 1시간 59분, 지난주 개봉한 '킬미'와 '내 눈에 콩깍지'는 각각 1시간 47분이다. '펜트하우스 코끼리'는 2시간 26분의 상영시간으로 시사회에 참석한 기자와 평론가의 원성을 샀다.

군살 없는 경쾌한 화법을 지닌 상업영화를 보기 드문 요즘 충무로, 참 지리멸렬이다. 한 평론가는 "디지털 탓"이라고 말한다. 비용 부담이 적은 HD카메라를 사용하다 보니 원 없이 찍고 그 내용을 상영시간에 최대한 반영한다는 것이다. 이유야 어쨌건 더하려는 욕심보다는 덜어내는 용기가 필요한 때다. 어차피 예술 할 것 아니면 짧게 치고 빠지며 돈이라도 제대로 벌어야 할 것 아닌가.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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