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캠퍼스를 둔 대학들의 공통된 고민 중 하나가 중복ㆍ유사학과 문제다. 서울캠퍼스와 지방캠퍼스에 아예 같거나 비슷한 이름의 학과가 설치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가르치는 교수만 다를 뿐 배우는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이러다보니 서울캠퍼스에 같은 학과가 있는 지방캠퍼스 학생들은 정체성에 적지 않은 혼란을 겪게 마련이고, 외부 편견도 신경이 쓰인다. 서울 A대 관계자는 "지방캠퍼스 학생들의 중도탈락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유도 따지고 보면 중복학과 문제가 크다"고 진단했다.
한국외국어대 통ㆍ번역대학이 최근 이같은 캠퍼스 간 중복학과 문제를 말끔히 해결한 사례로 평가받으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9일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한국외대는 지난해 용인캠퍼스에 통ㆍ번역대학을 처음 개설했다."용인캠퍼스 성장의 핵심 동력을 '통ㆍ번역'에 두게 되면 서울캠퍼스와 차별화 할 수 있고, 고유의 위상과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박철 총장의 제안을 교수와 학생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박 총장은 "서울캠퍼스에 똑같은 이름의 학과가 있는 상황에서 용인캠퍼스 경쟁력을 키우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고, 특성ㆍ차별화만이 독자적 발전의 지름길이란 점을 설득한게 주효했다"고 전했다.
9개 학과가 통ㆍ번역대학 전환에 동의했으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영어통ㆍ번역학부, 독일어ㆍ스페인어ㆍ이탈리아어 통ㆍ번역학과 등 1개 학부, 8개 학과로 구성된 통ㆍ번역대학의 지향점이 학생들을 공부에 매진하게 만들었다. 현지 언어의 완벽한 구사를 바탕으로 우리나라와 해당 지역 간의 이해 및 소통 도모를 위한 문화 통ㆍ번역이 목표로 설정됐고, 커리큘럼도 여기에 맞춰 개편됐다.
통ㆍ번역대학 1ㆍ2학년생들은 학기당 12학점의 집중적인 전공교육을 받고 있다. 다른 대학의 어문계열 학생들이 4년간 이수해야 하는 전공학점과 맞먹는다. 늘어난 전공학점 덕에 기존의 어학교육을 보강한 새로운 신설과목 개설이 가능해졌다. 스페인어 통ㆍ번역학과의 경우 문법, 작문, 강독 등 기존 과목들에 더해 스페인어구술평가, 시청각스페인어 등 듣고 말하기 위주의 과목들이 대폭 추가됐다.
1ㆍ2학년이 전공언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시기라면 3ㆍ4학년은 통ㆍ번역을 비롯해 해당 지역에 대한 다양한 인문ㆍ사회과학적 지식 습득에 주력하게 된다. 학생 본인의 적성과 진로에 맞춰 수강할 수 있는 전공선택 시스템인 것이다.
외대 측은 효율적인 전공 교육을 위해 1개의 동시통역연습실을 포함한 총 10개의 전용실습실도 갖추고 있다. 영어통ㆍ번역학부 2년 김모씨는 "전공 공부가 힘들긴 해도 어학능력을 기르기 위한 집중 교육이 이뤄지고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외대 통ㆍ번역대학 처럼 서울ㆍ지방캠퍼스에 동일한 학과가 있는 경우 차별화 및 특성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캠퍼스 간 중복학과 문제는 지방캠퍼스의 차별화가 이뤄져야 해결될 수 있다"며 "이런 점에서 외대 통ㆍ번역대학 설치는 좋은 벤치마킹 사례"라고 말했다.
김진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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