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진·개도국간 온도차…탁상공론 '도하 라운드' 전철 우려
"코펜하겐 기후협약이 도하 라운드의 저주를 벗어날 수 있을까."
인류의 미래에 중요한 갈림길이 될 유엔기후변화회의가 한달 앞으로 다가왔으나, 벌써부터 "협약 체결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12월 7~18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40개국 정상을 비롯, 192개국 대표가 참가하는 기후변화회의를 앞두고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5일 열린 마지막 준비회의는 한달 뒤의 '좌절'을 미리 보여준 무대였다.
우선 세계 1, 2위 탄소배출국인 중국과 미국이 여전히 구체적 감축목표조차 내놓지 못한 채 상대방을 비난하는데 열중했다. 아프리카 50개국 대표들이 선진국에게 더 큰 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라며 회의장에서 집단 퇴장한 것은 이번 준비회의 하이라이트다. 준비회의를 주관한 이보 드 보어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국장은 "코펜하겐에서 구속력 있는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을 것 같다"며 기대수준 낮추기에 들어가는 모습이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8일 "기후협약 체결의 어려움은 다자협상의 맹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며 "'도하 라운드'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무역자유화 다자협상인 도하 라운드는 전세계 무역장벽을 낮추자는 야심 찬 목표 아래 2001년 카타르 도하에서 출범했지만 8년이 넘도록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도하 라운드의 가장 큰 걸림돌인 선진ㆍ개도국 간 입장 차가 기후협약 협상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선진ㆍ개도국 간 입장차의 핵심은 탄소감축 목표가 아니라 선진국이 얼마나 개도국을 지원할 것인가"라고 분석했다.
개도국을 대표하는 G77과 중국은 지난 8월 "선진국들은 국내총생산(GDP)의 0.5~1%를 기후변화방지를 위해 사용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미국의 경우 매년 700억~1,400억달러, 유럽연합(EU)은 900억~1,800억달러를 개도국 환경보호 등에 제공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EU는 최근 선진국 블록 최초로 연간 320억~720억달러 규모의 기후변화 방지예산을 제시했지만 개도국 요구의 절반 수준이다.
세계 탄소배출 2위 국가인 미국은 기후변화 방지 지원 약속은 커녕 상원의 관련 입법 지연으로 온실가스 감축목표 조차 확정하지 못해 기후협약 체결의 주 걸림돌로 각국의 눈총을 받고 있다. 미국이 내놓은 기준에 따라 자국 목표를 정하려는 중국, 인도 등 신흥국들이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미국 환경운동 과학자단체 인 '걱정하는 과학자들 연합'(UCS)의 엘든 메이어 정책기획이사는 "미국이 코펜하겐 기후회의 전체를 불확실성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비난했다.
개도국은 바르셀로나 준비회의에서 선진국이 2020년까지 1990년 수준에서 최소 40%까지 탄소배출량을 감축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EU는 20%(타국이 동의하면 30%까지)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반면 미국은 난항을 겪고 있는 상원법안이 제시한 목표는 고작 4%에 불과하다. 코펜하겐에 실행 계획 없이 회의만 거듭하는 도하 라운드의 그림자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 "저탄소 압력 피하자" 中·印, 그린에너지 정책 가속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의 온실가스배출량은 1990년 22억4,400만톤에서 2007년 60억7,120만톤으로 18년 동안 세배 가까이 늘었다. 때문에 중국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세계의 노력은 성과를 거두기 힘들다. 그래서 미국 등 선진국들은 "2050년까지 중국의 탄소가스배출량이 절반은 줄어야 한다"고 몰아세우지만 중국은 별 반응이 없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이 유엔총회에서 "경제성장에 맞춰 2020년까지 괄목할 수준으로 탄소가스를 줄이겠다" 천명하고, 이어 2013년까지 탄소세를 도입한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12월 코펜하겐 유엔기후변화회의에서 중국이 구체적 감축수치를 제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신 중국은 점차 화석연료에서 풍력 등 천연자원으로 에너지정책의 축을 옮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일자 '그린에너지'특집 보도에서 "최악의 탄소 오염국인 중국이 '저탄소 배출 십자군'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환경에 대한 우려 때문이 아니라 중국이 화석연료에 계속 집착할 경우 조만간 자원고갈로 경제성장이 발목 잡힐 수 있다는 경제적 판단 때문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핵은 물론 태양광, 풍력발전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안드레아 스프링 미 하원 에너지위원회 소속 공화당 의원은 "중국의 풍력발전은 이미 미국의 기술을 앞서고 있다"며 "중국과 인도는 곧 상당한 그린에너지 독자기술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FT에 밝혔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선진국들로부터 강력한 탄소가스배출 감축 압력에 직면한 인도도 고효율의 에너지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세계의 견제에 대응할 수 있는 나름의 그린에너지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인도 의회는 19일부터 시작되는 동절기 회기 중에 클린에너지사용에 적극적인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기준에 부합한 에너지정책을 지킬 경우 일종의 '탄소배출권'을 인증하도록 한 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로이터통신은 8일 보도에서 "인도정부의 그린에너지 정책이 성공하면 매년 1만㎿의 전력을 절약하는 효과를 기대하면서 동시에 온실가스배출량 감소 압력에서 어느 정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최근 '스마트그리드'라 불리는 괄목할 만한 그린에너지 사업의 밑그림을 내놨다. 34억 달러의 정부예산을 포함해 총 81억 달러를 투입, 전국의 1,800만 개 계량기를 지능형으로 교체하고 자동화 변전소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 사업에는 '거대한 탄소배출국'이란 미국의 오명을 씻고자 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도가 담겨 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 회의론자들, 위험 과장해 불필요한 불안감만 조성 지적
탄소 감축을 위해 각국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한쪽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위험이 과장됐다는 회의론이 자리잡고 있다.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이산화탄소 증가와 지구 온난화 사이의 인과관계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지구온난화의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탄소 감축을 위해 전세계가 엄청난 투자를 쏟아 붓는 것은 무모하다는 목소리다.
대표적인 회의론자는 미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대기학과의 리처드 린젠 교수다. 그는 "이산화탄소가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최근 연구에서 지난 15년 동안 지구가 우주로 열 등을 내보내는 지구복사의 양을 조사한 결과, 지표면 온도가 올라갈 경우 지구복사의 양도 따라 늘어났음을 밝혀냈다. 즉, 지구는 적당량의 열을 이미 우주로 배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다른 회의적 환경론자들은 지구가 따뜻해진 결과 이산화탄소 배출이 증가한 것일 뿐, 그 반대의 인과관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 물리학자 프레드 싱거와 허드슨 연구소 연구원 데니스 에리버리는 <지구 온난화에 속지 마라> 는 책에서 기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태양 활동이며 이산화탄소 증가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들은 이산화탄소 소동이 환경 단체, 정치인, 선진국 등의 배만 불려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구>
과학적 논의 영역에 머물렀던 회의론은 이제 대중적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특히 베스트셀러 <괴짜경제학> 의 저자 스티븐 D. 레빗은 최근 출간한 <슈퍼 괴짜경제학> 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저자는 탄소 감축을 위한 인위적 노력보다는 화산 폭발 등 자연 현상을 통해 지구 온도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적었다. 파이낸셜타임스 기자 출신인 페림 맥알리어는 최근 앨 고어의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 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영화 <낫 에빌 저스트 롱(not evil just wrong)> 을 제작, 개봉했다. 이 영화에서 그린피스 창립 멤버인 패트릭 무어는 "탄소 감축 논의는 극단의 불안을 조장해 인간의 삶을 흔들고 있다"고 언급했다. 낫> 불편한> 슈퍼> 괴짜경제학>
회의론 확산과 함께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중들의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 지난달 퓨리서치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지구 온도 상승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있다'고 믿는 미 국민은 2008년 44%에서 35%로 줄었다. '온난화는 화석 연료 사용 등 인간 활동에서 기인했다'고 대답한 미국인 역시 지난해 47%에서 36%로 감소했다. 하지만 온난화와 탄소 감축 논의는 이미 정치적 이슈로 변질, 되돌리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최지향기자 jhcho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