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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달하 노피곰 도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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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달하 노피곰 도됴샤

입력
2009.11.10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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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신정동 정해 마을은 한글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가요, <정읍사(井邑詞)> 의 발상지이다. 샘골, 정읍의 시원인 마을은 샘물이 바다처럼 솟는다고 해서 샘바다(井海)라는 이름을 얻었다. 망부석이 되어버린 여인의 전설, 정읍사의 발원을 찾아 샘바다 가는 길은 내장산 서래봉의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있을 때였다.

망부석은 조각가에게 특별한 감흥을 일으킨다. 차가운 돌에 혼을 심고자 하는 조각가에게 망부석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한 때 '살아 있었던'생명의 돌이다. 하지만 해마다 이 맘 때 올리는 정읍사 여인의 제례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던 것은 온기의 흔적을 가진 돌에 대한 조각가의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을 초입에 이르자 팽나무와 버드나무가 서로를 휘감고 있어 얼핏 보면 한 그루처럼 보이는 수령 300년 고목이 정취를 자아낸다. 부부나무로 불리는 고목에 정읍사 여인의 애절한 염원이 깃든 것인지 마을에는 지금껏 이혼한 부부가 거의 없다고 했다.

정읍사 여인의 제례는 부부나무 옆의 '큰 새암'에서 맑은 물을 긷는 채수로 시작한다. 채수한 물로 차를 끓여 망부사에 봉안된 여인의 영정에 올리는 것이 제례의 중요한 의식이다. 채수 의식이 끝나고 부부나무 밑에 조촐한 상이 차려졌다. 촌로들과 둘러 앉아 마을의 내력을 들었다.

촌로들의 이마와 손등에는 태양과 바람과 노동의 흔적이 깊게 베어있다. 그 옛날 이 마을에 살았던 정읍사 여인, 월아의 삶도 다르지 않았으리라. 어린 아이를 둘러 업고 뙤약볕 밑의 고된 밭일로 힘겨운 삶을 살았을 캄캄한 시골 아낙에게 전주로 소금 행상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 도림은 걱정과 원망과 그리움의 존재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이라도 들리면 좋으련만 하소연조차 할 곳 없는 아낙의 가슴이 새까맣게 타 들어 가는데, 김매는 산비탈 황토 밭에 산비둘기만 일없이 울어댄다.

애달픈 월아의 삶은 작가 신경숙이 <엄마를 부탁해> 에서 그리고 있는 바로 그 어머니의 삶이기도 하다. 사산한 자식을 묻지 못하고 나흘 동안 차가운 냉방에 누워 문풍지 밖으로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고 있던 <엄마를 부탁해> 의 그 젊은 아내. 그 아내의 남편은 북 치는 것에 빠져 팔도를 떠도느라 그 때도 집을 비우고 없었다.

<엄마를 부탁해> 는 팽나무가 서 있는 정읍의 한 마을이 배경의 일부를 이룬다. 작가도 이곳 출신이다. 세간에서는 그 소설을 1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사회 전반의 경제 위기 속에 부상한 '어머니주의 문학'을 대표한다고 했다.

<장마> 와 <에미> 에서 고통스런 우리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여 한스러운 어머니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 작가 윤흥길 역시 이 곳 토박이다. 두 작가가 유달리 어머니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정읍사 여인의 고장 출신 이라는 점과 무관하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시대는 달라도 그들이 그리고 있는 어머니상은 그 옛날 백제 정촌현 고개에서 남편을 기다리던 월아의 모습과 고스란히 닮은 까닭이다.

정읍사 여인은 재능과 기품을 가진 것도 아니고 명문가의 여인도 아니다. 행상 나간 남편을 기다리던 촌부의 아내일 뿐이다. 하지만 정읍사 여인은 신사임당에 비견될 만한 한국의 상징적 여인상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촌로들만 너 댓 타고 있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차창 밖으로 멀어지는 정해마을을 바라보며 새삼 발견한 것은 월아가 남긴 망부석 전설의 생명력이었다. 망부석은 '살아 있었던 돌'이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돌'이다. 언제까지나 살아 있을 '이 땅의 정신'이다.

전강옥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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