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여름학기에 나는 피터 와일스(Peter J. Wiles) 교수의 사회주의 경제론을 수강했다. 각국의 사회주의 모델을 비판적 시각에서 강의하는 런던정치경제대학(LSE)의 와일스 교수는 이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이다.
한 학기 동안 수강하면서 교수가 추천한 참고서가 7, 8권 가량 되었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이들 책을 귀국할 때 가지고 오고 싶었으나 중앙정보부에 사상이 불온한 사람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몇 번 생각한 끝에 버리고 돌아 왔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었다. 지금 학생들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겠지만 우리 세대는 그런 세상을 살아왔다.
나는 69년 미국 연방준비 은행에 약 1년 동안 업무 연수를 다녀 온 일이 있는데 그 때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광하고 돌아오는 길에 아름다운 유리제품이 있어 선물용으로 사온 일이 있는데 뉴욕 숙소에 돌아와 보니 이것이 당시 공산국이었던 체코 제품이었다.
유리제품은 세계적으로 체코 제품이 유명하다. 이것을 가지고 들여오다가 공항에서 걸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어 이것도 버리고 왔다. 북한은 머리에 뿔이 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때였다.
여기서 귀국하는 길에 일본 도쿄에 들러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ㆍ한국을 지지하는 일본 거주 한국동포 단체) 계열인 친척집에 머물며 며칠 동안 시내 관광을 했다. 집안 형님의 안내로 어느 전시회에 갔는데 거기에는 북한 김일성 사진 등 북한 선전물이 일부 진열되어 있었다. 조총련계 시민단체에서 주관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나는 질겁하고 뛰쳐나왔는데 그 형님은 이상하게 보였는지 왜 그러냐는 것이었다. 나는 반공법에 걸리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식은땀이 나면서 한편으로는 의연하지 못한 내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귀국해서 이 사실을 정보부에 보고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한동안 지속되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나라나 진보와 보수는 있게 마련이고 이것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이면서도 차의 두 바퀴처럼 경쟁과 견제의 보완관계에서 균형적 역사발전을 이끌어 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남북분단의 특수여건 하에서 오직 대결과 극복의 적대관계로 변모되어 국가적 불행을 낳아왔다.
나는 어려서부터 좌우간의 극한대립이 얼마나 편협하고 폐쇄적인 사고에서 온 것인가, 그리고 그러한 대립이 얼마나 국가발전을 가로막고 있는가를 지켜보면서 자랐다. 45년 해방 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좌우 싸움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외세에 의한 국토분단 때문에 유발된 것이었다.
김구 선생의 마지막 남북합작 노력이 실패하고 남북에 각각 정부가 들어서고 서로 반대세력을 탄압하면서 좌우의 극한대립이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그 뒤 우리는 서로를 죽이고 모함하면서 오늘까지 살아 온 것이다.
나는 대학 재학 중 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 중도 진보적인 편이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주류 경제학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빈부격차, 북진통일론, 정치적 독재, 재벌의 정경유착 등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학 2학년 때인 56년 대학친구들과 같이 당시 진보당사로 조봉암씨와 진보당 간사장으로 있던 윤길중(민정당 의장)씨를 한번 찾아가 만난 일이 있었다. 그 때는 대통령 선거 직후였는데 조봉암씨는 대통령 후보로서 의외로 많은 득표를 했었다. 우리는 그 분들에 대한 신선한 감정과 호기심 반반으로 그들의 주장이 무엇인지 직접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 때 진보당사는 서울 남대문에서 남산으로 가는 도로의 다리 오른편 밑에 적벽돌로 지은 2층집에 있었다. 그 분들은 북진통일 대신 평화통일, 반독재, 그리고 빈부격차 축소정책 등이 기본정책이라는 점을 설명해 주었다. 우리의 생각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59년에 조봉암씨를, 그리고 61년에는 민족일보 사장이던 조용수씨를 사형에 처했다. 이런 정도의 진보적 비판 세력을 포용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편협하고 사상의 자유가 제한돼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중립화평화통일 노선을 주장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이 집행된 조용수 민족일보 사장에게 올해 9월 11일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고 그 가족에게 국가는 99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데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북한은 우리보다 월등히 심했다. 북한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어떠한 형태의 정부 비판도, 공산체제와 다른 어떤 사상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으며 인권에 대한 존중은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자유선거도 없고 야당조차 없지 않은가. 이처럼 집권자의 생각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으니 북한 동宕湧?반목과 갈등이 오죽하겠는가.
요즘 젊은 세대들은 그럴 수가 있을까 하겠지만 나의 세대는 물질적인 가난뿐 아니라 이렇게 정신적인 불안과 억압 속에서 살았다. 이제 극단적인 이념대결로 인한 이러한 국가적 불행은 없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보수는 진보를, 진보는 보수를 보완관계로 이해하고 동반자로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야 국민 통합이 되고 국가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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