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무서워졌다. 원래 무서운 곳이기는 했지만, 이젠 가히 '공포'수준이다. 거침없이 휘두르는 공정위의 칼날에 기업들은 벌벌 떨고 있다.
과거 정권 시절 공정위는 '재벌 손 보는 기관'이었다. 공정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도 '출자총액제한제(출총제)'였고, 공정거래법은 곧 재벌규제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MB정부 출범 후 출총제가 폐지되면서, '공정위가 이젠 무장해제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을 정도. 하지만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있다. 몇몇 재벌을 향해 겨누던 칼끝은 이제 전 업종, 전 기업을 향하고 있다.
오히려 예전보다 훨씬 강력하고, 훨씬 무시무시한 기구로 변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물가 단속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비등한 것도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경제 검찰' 본연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공정위의 집중 타깃이 되는 것은 기업 부당 공동행위(카르텔), 즉 담합이다. "한번 과징금을 맞으면 기업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거나 "우리는 카르텔법 집행이 너무 늦었고 앞으로 관련법을 강력하게 집행할 방침"이라는 정호열 공정위원장의 최근 발언을 보면, 차제에 기업들의 담합 관행을 완전히 뿌리 뽑을 기세다.
담합은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몫을 기업들이 짜고 나눠 갖는 것으로, '시장경제 수호를 위해서라도 타도해야 할 공적1호'라는 것이 정 위원장의 인식이다.
공정위의 공세는 가히 전 방위적이다. 특히 정부의 친 서민행보에 따라, 소비자 밀착업종에 대해선 거의 예외 없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당장 오는 11일 전원회의를 열어 6개 액화석유가스(LPG) 업체의 담합 혐의에 대해 제제 수위를 확정할 방침. 사상 최대 규모인 총 1조원대의 과징금이 부과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국내외 항공사들이 화물운송료를 담합한 혐의를 잡고 관련 업체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한 상태다. 공정위 관계자는 "가급적 연내에 제재를 마무리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말과 올해 초 소주업체들이 일률적으로 5%대 가격을 인상한 것에 대해서도 담합 혐의를 포착, 연내 제재가 이뤄질 전망이다.
이 외에도 휴대전화 요금, 철강 대리점 공급가격, 영화 관람료 등도 표적 대상. 여기에 9월부터는 유제품 업체(우유)와 제빵 업계(빵)에 대해서도 조사에 들어갔으며, 전국 200여개 주유소의 석유제품 가격 담합 혐의에 대해서도 일제 조사를 벌였다. 대학 등록금 담합 여부 조사도 내년 초 새 학기 시작 전에 마무리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렇게 카르텔과의 전쟁이 본격화하자 공정위가 제재에 앞서 피심인(해당업체)에게 송부하는 심사보고서 내용이 자주 새나온다. 예전에는 찾아 보기 힘든 일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검찰로 따지자면 공소장과 비슷한 심사보고서 단계에서 자꾸 혐의 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관련 업계의 언론 플레이라고 봐야 한다"며 "제재가 부당하고 과도하다는 식의 여론몰이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불쾌해 했다.
담합사실을 자진 신고하는 기업들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먼저 자수하는 기업에게는 과징금을 100% 감면해주는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 제도 때문.
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자진 신고한 기업을 '왕따'시키는 분위기였지만 요즘 들어서는 너도나도 자신신고를 하는 양상"이라며 "그야말로 '죄수의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리니언시 제도의 남용을 막기 위해 제도를 손을 봐야 한다는 요구가 갈수록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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