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통합 후 처음 추진했던 채권 발행이 투자자 부족으로 무산됐다. 사실상 정부가 보증하는 공기업이 채권발행에 실패한 것은 전례 없는 초유의 일로, 공기업 재정악화에 대한 시장의 경고로 풀이되고 있다. 향후 공기업들이 추진하는 국책사업도 차질이 우려된다.
LH는 지난 6일 실시한 1,000억원 규모의 채권발행(5년 만기)이 투자자 부족으로 무산됐다고 9일 밝혔다. LH 관계자는 "당초 목표했던 1,000억원 규모로 채권 발행을 추진했지만 이번 채권발행 입찰에 5개 증권사가 총 500억원 정도만 응모하는 데 그쳐 전량 유찰시켰다"면서 "오는 13일 재발행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무구조 악화와 과다 발행물량 탓
이번 채권발행이 무산된 것은 부채만 85조원이 넘는 LH의 열악한 재무구조가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LH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는 지난해에만 각각 12조원과 6조9,000억원의 부채가 증가하는 등 재무구조가 급격히 악화한 상태다.
올해 이미 13조5,000억원의 채권(주공 6조9,000억원, 토공 6조6,000억원)을 발행했기 때문에, 시장은 이미 LH채권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 힘든 '소화불량'에 빠졌다는 평가. 한 증권사 채권딜러는 "LH는 보금자리주택 등 대형 국책사업 수행에 필요한 재원마련을 위해 올해에만 2조원 가량을 더 조달해야 한다"며 "이렇게 물량이 넘치는 채권이라면 더 이상 투자 매력을 갖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물량 보다는 너무 낮은 금리로 발행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면서 "아직 국내 채권시장이 공사채를 소화 못할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낮은 금리발행 자체가 실패했다는 것은, 곧 LH에 대한 시장평가가 그만큼 우호적이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책사업으로 빚 떠안는 공기업
이번 LH의 채권발행실패는 앞으로 다가올 '공기업 재정위기'의 신호탄이란 평가다.
정부 주도의 대형 국책사업이나 '민원성' 사업을 떠맡은 공기업들로선, 채권발행 외엔 마땅한 재원조달 수단이 없다. 만약 채권발행이 무산되거나, 혹은 고금리로 발행해야 한다면 국책사업 추진 자체가 힘들어진다. LH 역시 이번 채권발행 차질로 인해 정부의 대표적 서민정책인 보금자리주택 건설을 추진하는 데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LH로선 발행금리를 높여 채권발행에 나서야 할 텐데, 설령 성공한다 해도 그만큼 이자부담이 늘어나 재무구조악화는 불가피해진다.
비단 LH만의 문제는 아니다. 정부 대신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떠안게 된 한국수자원공사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8조원 예산조달을 위해선 채권을 발행해야 하는데, 이로 인한 부채비율 증가와 재무구조악화는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오는 2013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2기를 추가로 건설할 계획인 한국수력원자력도 해당 사업에 약 48조원을 부담해야 할 처지. 인천공항철도의 민자 투자 지분을 인수한 코레일 역시 1조2,000여억원의 인수 대금을 충당하기 위해 채권 발행을 검토 중이다.
한 시장관계자는 "공기업이라고 해서 무조건 최고등급으로 채권발행에 성공하던 시대는 지나고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채권발행무산이나 고금리발행 같은 상황이 자주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전태훤기자 besame@hk.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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