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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세종시의 분쟁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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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 칼럼] 세종시의 분쟁비용

입력
2009.11.10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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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대계 양심 명예 국익 진정성 등 거창하고 비장한 용어가 쏟아지고 장황한 설명이 붙는 것이 수상하다. 근본을 잊거나 큰 길을 피하고 현실을 앞세워 작은 길로 돌아가려 할 때 으레 나오는 행태다. 하늘 아래 100% 선하고 옳은 것은 없다. 그래서 경제적 잣대도 있고 정치적 판단도 있는 것이다. 전자를 따르면 능률과 효율이고 후자를 따르면 정략이고 포퓰리즘이라는 태도야말로 설익은 지식이자 철학의 빈곤이다.

균형발전 철학 없는 명품도시론

대통령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타협이 없다"고 했고 총리는 "경제학을 전공해서 잘 안다"고 했다. 신뢰와 도덕성 문제를 원죄처럼 안고 출범한 정부의 색채나, 신의가 바탕인 화폐금융론을 공부한 지적 배경에 비춰 왠지 어색하다. 세종시에 대한 대선 전후 대통령의 어록과 <가슴으로 생각하라> 는 자서전에서 총리가 그토록 강조한 신의와 약속 대목을 읽으면 당혹스럽다.

청와대는 박근혜씨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정운찬 총리 발탁과 함께 밀어붙이려던 세종시 수정 로드맵이 정치적 신뢰와 약속을 강조하는 박씨의 말 한마디에 다 헝클어졌으니 말이다. "선진국으로 가는 인프라는 사회간접자본(SOC)이 아니라 신뢰하는 무형의 인프라"라는 상식적 언급이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하는 현실은 역설적으로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문제를 쉽게 생각하고 서툴게 다루는지 잘 보여준다.

교육ㆍ산업ㆍ연구ㆍ녹색이 잘 어우러져 자족기능을 갖춘 명품도시를 만들고, 원안보다 실효적으로 발전되고 유익한 대안을 내놓겠다는 등 참으로 솔깃한 제안이다. 반대세력이 비능률과 고비용의 대명사인 행정부처 이전만 포기한다면 다른 것은 학교든 기업이든 뭐든지 원하는 대로 얹어 주겠다고도 했다. 부지조성 원가 개념은 아예 없고 무차별적 세제ㆍ금융지원은 특혜가 아니라 인센티브로 포장된다.

원칙을 버리고 약속을 뒤집으려니 다른 원칙은 세울 이유도, 겨를도 없다. 상황에 따라 약속과 소신을 뒤집는 것은 책임과 용기로 치장된다. 역사와 배경에서 우리와 전혀 다른 독일의 사례는 감탄할 만한 타산지석으로 둔갑하고 브라질의 경우는 입맛에 맞춰 아예 왜곡된다. 이쯤 되면 행정부처를 원안대로 옮기는 비용이 큰지, 옮기지 않으려고 온갖 편법을 동원하는 비용이 큰지 가늠하기 힘든다.

정부가 무리하고 거친 행보를 거듭하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꿰었기 때문이다. 세종시 문제는 기본적으로 정치이고 정치는 명분인데도 치밀한 내부조율도 없이 섣불리 경제잣대를 들이대서다. 세종시가 포퓰리즘 혹은 득표전략의 산물이었다고 해도 수도권집중 해소와 국가 균형발전을 앞세워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건 후보가 당선됐다. 이후 헌재 위헌결정 등 우여곡절을 거치는 과정에서 한나라당은 고비용과 비효율을 알면서도 균형발전 명분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 핵심은 행정부처가 이전하지 않으면 날로 비대화하고 견고해지는 수도권의 기득권을 깰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원안이든 대안이든, 세종시 재논의의 출발을 국가경쟁력이나 통일 이후 국가미래로 삼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균형발전이 빠진 이런 기준과 별개로 일을 만드는 방식도 어설프기 짝이 없다. 다른 것은 다 제쳐둔다고 해도 박근혜씨와의 사전교감 노력은커녕 오히려 합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친이-친박 세력의 갈등과 대립을 키워가는 것은 정권 관리의 기본도 모르는 처사다.

국정갈등 사회적 비용이 더 커

정부부처 이전에 따른 행정비효율을 말하지만 보다 큰 문제는 그 논란에 휩싸여 표류하는 국정혼선과 비효율이다. 서울대 표학길 교수가 지적한 이른바 '분쟁 비용'이고 정치경제적' 기회비용'이다. 세종시가 급하다고 파행적으로 재원과 자원을 마구 당겨 쓰면 전국에 산재한 혁신도시와 기업도시가 유령도시화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변곡점을 맞은 경제와 새해 예산안, 4대강 사업 등 주요 국정과제 역시 뒤로 밀려나 제대로 풀기 어렵다.

사안의 매듭이 꼬여갈수록 근본을 따져 묻고 큰 길로 가는 게 해답이다. 지금껏 정부가 내놓은 어떤 논리도 왜 세종시 원안이 아니고 수정안으로 가야 하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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