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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전화의 역사' 보이스 피싱 1920년대 사람도 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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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전화의 역사' 보이스 피싱 1920년대 사람도 낚았다!

입력
2009.11.08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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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지음/인물과사상사 발행ㆍ432쪽ㆍ1만4,000원

백범 김구는 1896년 인천형무소에 수감돼 있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 일어나자 보복으로 일본군을 살해했다가 붙잡힌 것이다. 백범이 교수대로 끌려갈 순간, 사형집행정지 명령이 떨어졌다.

고종이 백범의 심문서를 뒤적이다가 국모보수(國母報讐ㆍ국모 살해에 대한 앙갚음)라는 글자를 보고 전화를 걸어 그를 살리라고 했던 것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쓴 <전화의 역사> 는 1896년 전화가 처음 개설된 이래 휴대폰 4,000만대 시대를 눈 앞에 둔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전화 문화사' 100년을 정리한 드문 서적이다.

책은 전화와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를 담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요즘 말로 '보이스 피싱'이 1920년대에도 성행했다는 것이다. 당시 신문을 인용해 소개한 일화는 1928년 4월 서울 종로의 삼광상회로 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된다.

전화를 한 사람은 왕실 일을 보던 이왕직(李王職) 관계자를 자처한 뒤 "대비 전하가 쓸 금비녀 등 170여원 어치를 가져오라"고 주문했다.

삼광상회 사람이 물건을 들고 창덕궁으로 달려가자 양복 입은 청년이 나타나 "대비께 보여드리고 쓸 만한 것만 사겠다"며 가져간 뒤, 종적을 감춰버렸다.

1960년대에 전화가 특히 필요했던 사람은 계주다. 당시는 계가 재산증식 수단으로 각광받던 시기였는데 계주가 계원을 관리하려면 전화가 반드시 필요했다.

지금은 부자동네로 유명한 개포, 논현, 신사, 압구정, 역삼동 등지는 당시 공중전화나 전신전화취급소가 없는 '벙어리동(洞)'으로 꼽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화는 가입청약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귀했지만 1980년대 1가구 1전화 시대를 맞으며 일상적인 물건이 됐다. 지금 한국은 세계 최고의 전화강국이다. 전화를 신청하면 그날로 개설해주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1990년대 이후 휴대폰이 일상화되면서 우리의 삶도 크게 변했다. 문자메시지, 음악ㆍ영화 감상, 게임, 영상통화, 무선 인터넷 등이 휴대폰으로 가능해지면서 생활 전반을 바꿔 놓은 것이다. 저자는 이를 두고 휴대폰이 '신흥 종교'가 됐다고 표현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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