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30분 거리에 세 개의 시립도서관과 한 개의 구립도서관이 있는 덕에, 그날의 기분이나 소장도서에 따라 번갈아 가며 도서관을 이용한다. 며칠 전엔 반납도 할 겸 마포평생학습관을 찾았다. 평소 북적이던 로비가 신종플루 탓인지 한산하다.
로비를 가로질러 자료실로 가는데 어디선가 "명함 만드세요!"하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책상에 타자기 비슷한 것을 놓고 젊은 남녀 둘이 앉아 있다. 소박한 안내판에는 '점자 명함 갖기'라 씌어 있고, 그 아래 조그맣게 '휴대폰도 가능'이라고 적혀 있다. 종이에 이름을 적어주자 타자기 같은 걸로 순식간에 점자 스티커를 만들어준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알 길이 없는 점자지만 내 이름이 적힌 스티커를 휴대폰에 단단히 붙였다. 혹시 휴대폰을 잃어 시각장애인이 습득하는 일이 생긴다면 큰 도움이 되리란 생각에 마음이 흐뭇해진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11월 4일, 점자의 날이다. 1926년 11월 4일 박두성 선생이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완성해 반포한 것을 기념해 제정한 것이다. 아마 그래서 행사를 하는 모양인데, 플래카드며 홍보 전단이 수두룩하던 다른 행사 때보다 초라한 모습이 맘에 걸린다. 그나마 이곳은 시각장애인실을 따로 운영하고 있어 이런 행사라도 하지만 다른 도서관들은 어떨지... 도서관이란 이름을 내건 곳에 변변한 점자 자료실 하나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
몇 년 전 이곳에서 처음 시각장애인용 도서실을 봤을 때는 깜짝 놀랐다. 시각장애인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책을 필요로 한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침 자원봉사자를 찾고 있기에 며칠 뒤부터 입력 봉사를 시작했다. 학술서적을 점자책으로 만들기 위해 책 내용을 입력하는 일이었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종일 컴퓨터로 일하다 보니 어깨통증이 심해져 6개월쯤 지나자 계속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대신 일주일에 한 번 시각장애인에게 직접 책을 읽어주는 대면봉사를 시작했다.
시각장애인과 지속적으로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눈이 안 보인다는 걸 의식할 수 없을 만큼 행동이 자연스러워 놀랐다. 더 놀란 건, 하얀 종이를 앞에 놓고서 중요한 내용이 나오면 점필로 찍으며 듣는 모습이었다. 두 시간 정도를 읽고 나면 그렇게 점자로 메모한 것이 16절지 두 장쯤 되었는데, 그걸 보면 왠지 내 마음이 뿌듯했다. 사정이 생겨 몇 달 뒤 봉사는 그만두었지만, 그 경험을 통해 시각장애인에게 책이 얼마나 간절하며 점자가 얼마나 큰 의미를 갖는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신문을 보니 우리나라에서 한 해 출판되는 점자책이 50권도 채 안 된다고 한다. 더구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국공립 도서관도 하나 없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해서 앎에 대한 욕구나 필요까지 어두워지는 것은 아닌데, 육체적인 불편 때문에 마음까지 불편을 겪게 하는 사회에서 과연 온전한 앎이 가능할까.
요즘 국공립도서관에서는 각종 문화행사와 강좌를 여느라 분주하다. 도서관을 찾는 사람이 늘고 지역주민들이 도서관에서 생활의 활력을 얻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도서관은 뭐니 뭐니 해도 책을 읽는 곳. 책이 필요한 사람이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도서관이다. 눈이 어둡든 밝든 책을 읽고 싶은 사람은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그가 읽고 싶은 책이 거기 있어야 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 점자책과 녹음도서,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도서관을 더 많이 만들자. 그게 눈 밝은 사람의 도리다.
김이경 소설가ㆍ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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