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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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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성란의 길 위의 이야기] 입장

입력
2009.11.0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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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홍대의 밤거리, 수많은 젊은이들 사이를 지나 종종걸음치고 있었다. 자동차 경적과 고함 소리, 웃음 소리들이 웅웅대는 속에서 젊은 여자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다시 태어난다면 말야…" 아직도 이런 대화를 나누는 젊은이가, 그것도 홍대에서, 귀를 기울였다. 바로 앞서 횡단보도를 건넌 두 명의 여자 중 조금 통통한 여자였다, 그 뒷말이 궁금했다.

바위? 구름? 아니면 남자? 뜸을 들이던 그 여자가 말했다. "난 영국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라 더욱 신선했다. 뒷사람들에게 밀리는 바람에 아쉽게도 그 이유를 듣지 못하고 말았다. 그 며칠 뒤 출근길에 맞은편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두 분의 노인을 보았다. 일교차가 큰 날씨 때문일까 두 분 다 중절모에 무릎 길이의 코트로 중무장을 했다. 두 분과 스치는 그 몇십 초, 앞뒤 잘린 단 한 마디 말만 들었다.

"살아 있는 동안 말야…" 옆의 분이 또 가르치냐는 듯 고개를 흔드는 척만 했다. 두 분의 행선지는 시에서 운영하는 노인학교인 듯했다. 다시 태어난다면, 살아 있는 동안. 아무래도 두 팀의 대화 내용이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 분 노인에게 의미 있고 소중한 날은 바로 오늘일 것이다. 그렇다면 스무 살이 갓 넘은 젊은 여자가 말한 다시 태어나는 삶이란, 가진 자의 여유였을까.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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