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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수출입은행장의 '숨은 1등기업 탐방' 동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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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수출입은행장의 '숨은 1등기업 탐방' 동행기

입력
2009.11.0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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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에서 충남 아산시로 향하는 45번 국도변. 큰 길에서도 족히 500m는 더 들어간 야산 중턱에 한 중소기업이 있다.

논과 축사, 저수지가 둘러싼 이 곳이 세계 1위의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기업이란 사실이 놀라울 뿐 이다.

반도체 폐기물 재생처리 업체 ㈜실파인. '히든 챔피언'(Hidden Championㆍ일반에 인지도는 낮지만 최고의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을 보유한 중소기업)은 역시 '숨어' 있었다.

지난 6일 오전. 김동수 수출입은행장이 작업복 차림으로 이 곳을 찾았다. 며칠 전 '한국형 히든챔피언'으로 이 업체를 선정한 뒤,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서다.

평소 은행 지점장조차 만나기 쉽지 않은 중소기업에게 국책은행장의 방문은 엄청난 '영광'이었다. 임승룡(47) 사장은 "저희 같은 중소기업이 이런 지원을 받게 될 줄은 꿈도 못 꿨다"며 고마워했다.

숨은 보석기업

실파인은 반도체 폐기물을 스스로 '도시광산'이라 부른다. 도시의 공장 한가운데서 수없이 버려지는 고가의 소재를 되살려 다시 황금처럼 쓸 수 있다는 의미에서다.

임 사장은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반도체 강국이지만 대기업들이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불량품과 부산물을 모두 폐기하고 있는 현실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아무리 어려워도 매년 매출액의 10% 가량을 연구개발에 쏟아 부었다. 그 결과, 벌써 관련 국내 특허만 14개. 미국과 대만에서도 특허를 따냈다. 대기업마저 탐내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기술이 탄생한 것이다.

실파인의 기술은 크게 3분야다. 먼저 불량 웨이퍼(반도체 원판) 재생 기술. 불량웨이퍼는 생산과정에서 보통 10%정도 나오는데, 여기엔 업체의 고유기술이 담겨있어 그 동안 약품처리로 정보를 지운 뒤 전량 매립했다.

실파인은 환경에 나쁜 약품 대신, 미세 세라믹 파우더로 웨이퍼 표면을 박리해 보안문제도 해결하고 이를 태양광 전지판의 실리콘 소재로 다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잠재 시장가치만 2조원 규모인 '노다지 시장'을 선점한 셈.

포토마스크(사진 필름처럼 웨이퍼 위에 반도체 회로를 찍는 원판) 역시 불량품은 전량 폐기됐었지만, 실파인은 이를 포토마스크 원재료나 광학용 필터(석영 유리)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웨이퍼를 가공할 때 뿌리는 물과 섞여 나오는 반죽 같은 찌꺼기(슬러리) 역시 실파인에겐 '보물'이다. 삼성전자에서만 월 5,000톤의 폐 슬러리가 버려질 정도지만 실파인의 기술은 이를 분리해 알갱이는 고순도 실리콘으로 되살리고 정제된 물은 공업용수로 재생시키고 있다.

결국 반도체 업체가 버리는 폐기물을 재가공해 태양광과 반도체 산업에 다시 고가의 원료로 제공하는 셈. 환경파괴도 막고 원가도 낮추는 일석이조의 신기술이다.

실파인은 향후 3년 안에 전 공정의 특허출원을 마치고 재가공을 거쳐 나오는 실리콘 소재를 이용해 미래산업인 태양광 분야에까지 직접 뛰어들 계획이다.

"퍼주기식 중기 지원 그만. 될 기업 찍어 키우자"

숨은 1등 중소기업을 지원하자는 '한국형 히든챔피언'프로젝트는 김동수 행장의 아이디어다.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김 행장은 올 초 헤르만 지몬 교수의 <히든챔피언> 을 정독한 뒤 은행 실무자들에게 "효과가 불명확한 퍼주기식 지원보다 될 만한 중소기업을 골라 육성해 보자"고 제안했다.

오랫동안 수출 대기업 지원에만 익숙했던 직원들로선 반신반의. 하지만 김 행장은 고집스럽게 중소기업지원을 추진했다. 거액의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6개월 여의 준비 끝에 1차로 12개의 한국형 히든챔피언 후보를 선정했다.

모두 세계 수위를 다투는 강소(작지만 강한)기업들이다. 김 행장은 "나 자신도 우리나라에 이런 숨은 보석 같은 중소기업들이 있는 줄 몰랐다"면서 "이런 기업들을 지원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바로 국책은행의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날 김 행장은 실파인의 기술 신빙성과 향후 사업계획을 꼼꼼히 따져 물은 뒤, "결국 자금과 해외개척이 열쇠"라며 "현재 자기자본의 60%까지 가능한 대출한도를 100%까지 늘릴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했다.

늘 안정적 자금조달과 수출판로개척 문제로 고민하던 실파인으로선 수출입은행의 히든챔피언 육성 대상에 선정되면서 장기 저리 대출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한꺼번에 제공받게 됐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똑 같은 대출이지만 최고경영자(은행장)의 여신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프로젝트"라며 "경제위기로 마침 실파인의 기술개발 자금이 고비를 맞은 상황에서 이번 지원은 결정적인 돌파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한국형 히든챔피언이란

독일 경영학자 헤르만 지몬 교수가 정의한 히든챔피언을 발전시킨 수출입은행의 수출 중소기업 육성 프로젝트.

수은은 앞으로 10년간 '수출 1억달러 이상의 지속적 세계시장 지배력을 가진 중소ㆍ중견기업' 300개를 선별, 총 20조원을 지원키로 했다.

아산=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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