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쓰촨(四川)성 대지진 현장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썼던 확성기가 중국의 국보로 지정됐다고 한다. 지난해 5월 원 총리는 비를 맞으며 이 확성기를 들고 건물더미에 깔린 국민들에게 "조금만 더 참아라, 총리 할아버지가 왔다"고 외쳤다. 산사태 위험 때문에 철수하겠다는 군인들에게 "인민이 너희를 길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구조를 독려했다. 13억 국민을 단결시킨 이 일은 정부대변인 발표나 중국공산당 홍보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 기자의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려졌다.
얼마 전 우리 정부의 고위관리와 세종시 문제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다. 정부가 뚜렷한 방침을 갖고 있다면 솔직하고 공개적으로 국민과 직접 대화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 관리는 한 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아이 참,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일을 직접 하시겠느냐"고. 더 이상 대화가 진전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총리라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조만간 기자간담회를 통해 설명을 할 것이다"고. 그리고 흘러나온 내용은 우리가 아는 바다.
국민감동 일으킨 지도자 호소
중국의 '확성기'와 우리의 '간담회'를,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좀 그렇다. 하지만 그 자리를 마치고 나오면서 '원자바오의 확성기'가 계속 떠올랐다. 위로부터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풍조가 있다면 중국이 더할 것이고, 지도자와 국민이 직접 대면할 기회를 만들려고 든다면 우리가 훨씬 편할 터이다. 더구나 감동과 소통을 이루는 수단과 방법에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중국에서도 '확성기 정치'를 하는데, 우린 '무전기 정치'나 '문자메시지 정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상념은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 '거부'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연설을 대독하는 것은 지극히 합법적이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설명과 추측은 좀 다르다. 야당 의원들이 환영하기는커녕 외면할까 봐, 국회의장에게 머리를 숙이고, 서서 연설하는 동안 더 높이 앉은 의장이 뒤에서 내려보고 있어서, 대통령보다 앞서 퇴장해 버리는 의원들이 있을 것 같아서 그랬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일을 직접 하시겠느냐"의 인식과 상통해 있다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세종시 문제로 돌아가면 이러한 생각은 더 깊어진다. '원안'이나 '원안+알파'가 아니라 일찌감치 '수정안'쪽으로 작심하고 있었음은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 문제가 촉발된 것으로 돼 있는 '총리내정자의 캠퍼스 발언'이 평소의 소신에 따라 나온 게 아니었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최근 10여년간 국민적 관심사에 대해 충고나 입장 표명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정운찬 총리지만 세종시에 대한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4년 전 특별법 제정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던 총리가 내정되자마자 첫 이슈로 세종시 수정을 들고 나왔다면 그것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의지라고 판단해야 한다.
대통령의 의지 수행을 총리가 (공감했든 설득을 당했든)떠맡은 셈인데, 이 정도의 동력으로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모든 논의가 4년 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간 데다 이미 땅값까지 지불된 마당이어서 수정안을 관철하려면 그 때보다 훨씬 많은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세종시 해법 대통령이 나서야
4년 전의 약속 이행이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방향 선회든 국민과의 공감이 전제되어야 하고, 공감을 넓혀가기 위해선 감동을 일으키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필수적이다. 약속이나 대계는 공감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나가라"가 아니라 "나를 따르라"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일을"이 아니라 "대통령이니까 직접 그렇게"가 되어야 한다. 이미 시작된 세종시 싸움이 장기간 '국가재난 상황'으로 번질 양상이니 한시라도 빨리 '확성기'를 들고 나설 필요가 있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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