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사는 김모(33)씨는 최근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가 주행 내내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했다. 당산서중학교 앞에 깔린 자전거 전용도로는 입구부터 승용차 서 너 대가 떡 하니 주차해 길을 막고 있었다. 승용차를 피해 전용도로에 올라 페달을 밟은 길이는 겨우 100m 남짓. 자전거도로가 뚝 끊겨 버렸다.
차도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영등포구청 방향으로 달리다 보니 다시 100m 길이의 자전거도로가 나왔지만, 페달에 힘을 주려는 순간 마을버스 한 대가 쑥 치고 들어와 급정거할 수밖에 없었다. 버스정류장이 자전거도로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는 승객들 사이를 지나 자전거도로를 다시 달렸으나, 영등포구청 앞 사거리에 이르자 도로는 사라져 버렸다.
이 자전거 도로는 영등포구가 서울시의 예산을 받아 지난해 9월 '도로 다이어트' 방법으로 분리대까지 세워 만들었다. 김씨는 "이렇게 뚝뚝 끊긴 짧은 자전거도로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자전거 열풍이 부니까 계획도 없이 되는대로 도로를 만들어놓고 보자는 것 같다"고 혀를 찼다.
서울시가 경복궁 주변에 3억3,000만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 8월 말 완공한 자전거도로도 1.4km 짜리 '나 홀로 자전거도로'다. 청와대 춘추관 앞에서 시작해 동십자각 사거리를 거쳐 정부중앙청사 사거리에 이르면 길은 뚝 끊긴다.
최근 동십자각 사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연결되는 자전거도로가 생겼지만 이 역시 수백m에 불과하다. 서울시는 내년에 경복궁 주변을 모두 잇는 자전거도로를 만든다는 계획이지만, 차도와 자전거도로 사이에 분리대가 없다 보니 지금도 자전거 이용자들은 거의 없다.
삼청동에 사는 정우태(34·사업)씨는 "버스와 승용차들이 자전거도로를 침범하기 일쑤고 광화문 앞은 차들이 속도를 내 달리는 위험한 지역이어서 자전거 탈 엄두가 안 난다"며 "청와대 바로 옆이라 전시용으로 만들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차도 옆에 들어서는 자전거전용도로 상당수가 이처럼 짧은 '나홀로 도로'여서 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까지 자전거도로를 연결해 출퇴근이 가능한 도로망을 구축한다는 계획이지만, 이미 중구난방식으로 만들어진 곳이 많아 연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최근 서울시가 제작한 자전거교통지도를 보면 ▦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서 숭실대입구역 ▦동작구청 앞에서 7호선 장승배기역 ▦지하철 3호선 교대역에서 남부터미널 방향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동 방향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서 산림청 ▦지하철 5호선 우장산역 부근에서 제일성심병원 ▦전쟁기념관에서 4호선 숙대입구 방향 등 '나홀로 도로'들이 곳곳에 흩어져있다.
이는 종합적인 자전거도로 계획이 나오기 전에 각 구청이 우후죽순 도로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자전거도로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것은 지난해 말이고, 자전거도로시설지침도 올해 초 만들었다.
특히 이들 '나홀로 도로' 중 상당수는 재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연결이 불가능한 상태다. 영등포구청 앞 자전거도로도 인근 차도와 건축물 구조상 더 이상 확장이 어렵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이 일대 도로와 인도가 협소해서 자전거도로를 무리하게 늘릴 경우 사고 위험도 있다"며 "안타깝지만 확장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혜경 서울시 자전거교통담당관은 "이미 형성된 자전거도로를 모두 연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2012년까지 중요 도로 중심으로 어느 정도 연계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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