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염색폐수 얼룩 '무지개 하천' 오명 씻고 '생명 무지개'
올해 8월 환경부가 평가한 수도권 지역 조깅ㆍ산책 코스 순위에서 구리 왕숙천시민공원은 일산 호수공원과 과천 서울대공원에 이어 3위에 뽑혔다. 수질과 대기환경, 주변환경, 접근성 등이 그 만큼 우수하다는 뜻이다. 이 달 초 경기도보건환경연구원이 발표한 도내 미세먼지 조사에서도 왕숙천을 끼고 있는 남양주시와 구리시는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환경도시로 공인 받는데 기여한 일등공신은 수도권의 대표적 생태하천으로 탈바꿈한 왕숙천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무지개 하천이라 불리던 곳
왕숙천은 포천시 수원산에서 발원해 남양주와 구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길이 37㎞의 한강 제1지류로 수도권 동북부의 젖줄 역할을 해왔다. 상류에 염색공장과 축산농가가 늘어나고 하수종말처리장 등 환경기초시설이 들어서기도 전에 남양주에 아파트단지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오염물질이 흘러 들었다.
물고기가 떼죽음 당한 장면이 언론에 수시로 소개되면서 도시 이미지도 완전히 구겨졌다. 1992년 구리시 환경과장으로 부임한 후 18년 동안 환경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김정국 환경관리사업소장은 왕숙천에서 시민들이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부임했을 때가 기억납니다. 상류에 염색공장이 많았던 탓인지 하루는 물 색깔이 파란색, 다음날에는 빨간색으로 변하더군요. 어떤 날은 아예 시커먼 물로 변해 잉어와 붕어가 둥둥 떠올랐어요. 매일 물 색깔이 달라져 주민들은 무지개하천으로 불렀죠."
고니 등 조류 20여종 서식
왕숙천을 가로질러 구리와 남양주를 연결하는 세월교 부근은 사람과 차량들만 북적거리는 것이 아니었다. 물 속을 들여다보니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는 모양새가 얼핏 보면 온천수가 올라오는 것 같다. 자세히 보니 다리 밑은 치어들 세상이다. 구리시 환경단체인 미래환경을생각하는시민모임 회장을 지낸 이형욱씨는 "치어가 풍부해지면서 이를 먹이로 삼는 조류가 몰려들게 됐다"며 "놈들의 존재는 먹이사슬 구조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왕숙천은 유역면적이 넓어 폭이 100m 달하는 곳도 있다. 상류에서 떠내려온 퇴적물이 쌓여 모래톱을 형성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억새와 갈대 숲으로 뒤덮인 교실만한 모래톱도 있을 정도다. 모래톱 주변은 퇴적물이 많지만 갈수기에도 물은 맑다. 갈대와 억새가 수중의 인 성분을 흡수해 녹조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모래톱은 하천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사람들 접근이 힘들다. 새들이 둥지를 틀고 서식하기엔 적합한 곳이다. 지난해엔 수달도 출현했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돌이건 시멘트 구조물이건 하천 중앙에 볼록 솟아오른 공간은 새들의 쉼터다. 민물가마우지와 왜가리가 길이 2m도 안 되는 좁은 돌 위에 함께 앉아 있다. 둔치 자전거도로와 산책길을 따라 100m쯤 걸었을 뿐인데 물총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청둥오리 원앙 논병아리 흰죽지 등이 발견됐다. 왕숙천에는 현재 멸종위기야생동물인 가창오리와 고니 등 조류 20여종이 서식하고 있다.
어종 다양한 인기 낚시터
새들이 많다는 건 물고기가 풍부하다는 말과 똑같다. 이 기회를 강태공들이 놓칠 리 없다. 이 곳은 낚시가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고기들이 많이 모여드는 수중보와 다리 근처에는 어김없이 낚시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한 낚시꾼은 1시간 동안 잡은 붕어 3마리를 보여준다. "이맘때면 붕어가 제격이야. 여름에는 낚시로 참게도 잡지."
왕숙천이 이처럼 괄목상대한 것은 왕숙천을 끼고 있는 구리시와 남양주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이 주변 자연환경을 꾸준히 돌보고 투자한 덕분이다. 지자체들은 둔치에 봄에 유채꽃, 가을에는 코스모스를 심어 환상적인 산책로를 조성한다. 구리한강시민공원과 산호동 세월교 사이 둔치를 따라 왕복하는 하프마라톤대회는 마라톤 마니아들이 몰려드는 인기코스다. 올해 5월에 열린 3회 대회 때는 3만여명이 참여해 유채꽃밭 사이를 가로질렀다. 구리시 관계자는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둔치 공간을 습지생태공원으로 조성해 생태교육 현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철원기자 strong@hk.co.kr
사진=김주성기자 poem@hk.co.kr
■ 동구릉/ '아차산·왕숙천 잇는 생태축' 600년을 오롯이
경기 구리시 인창동에서 왕숙천과 합류하는 지류인 동구천을 거슬러 서쪽으로 100m 정도만 걸어가면 동구릉(東九陵)이 나타난다. 조선 최대의 왕릉군으로 태조 이성계의 묘인 건원릉(健元陵)을 비롯해 9개의 능이 조성돼 있다. 동구릉을 비롯한 전국의 조선왕릉 40기는 올해 6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191만㎡에 달하는 동구릉은 역대 왕과 왕비 17위의 유택이 모셔진 만큼 관리감독이 철저히 이뤄져 왔다.
600년간 이어진 보존노력 덕택에 동구릉 내 숲은 동식물의 보고로 변했다.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날도래와 풀잠자리알을 볼 수 있고 곤줄박이 딱따구리 꾀꼬리 찌르레기 등 새들이 눈에 띈다.
왕숙천(王宿川)은 이성계가 묘 자리를 구하러 왔다 하룻밤을 묵었다고 해서 유래했다. 왕숙천과 동구릉은 생태적으로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동구릉은 동쪽의 아차산과 서쪽의 왕숙천을 이어주는 중요한 생태 축이다. 아차산에 서식하는 너구리가 능선을 따라 동구릉으로 이동하고 동구릉에 터를 잡은 왜가리가 왕숙천으로 날아가 먹이사냥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아차산에서 넘어온 멧돼지가 왕릉을 훼손할 것을 우려해 매주 월요일 포획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매표소부터 능 입구까지 늘어선 참나무는 일제시대 때 소나무를 대량으로 벌채한 후 심은 것이다. 그래도 능 주변만큼은 아직도 우람한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동구릉을 관통하는 동구천은 1급수 하천이다. 물이 맑고 새들이 많다 보니 학생들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생태교육장소로 인기가 있다. 18대 임금 현종이 묻힌 숭릉 부근 저수지는 새들의 보금자리다. 늦가을 풍경을 보여주는 저수지의 갈대와 낙엽도 일품이다.
강철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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